시간이 지났다고 범죄를 면책해 주는 제도라면 법이 피의자에게 도망만 잘 다니길 권장하는 것 아니냐며 법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는 의견이 많다. 이른바 ‘개구리소년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 사건 등 여러 반인권적 범죄들은 공소시효 뒤로 밀려나며 지금껏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결과 피해자 및 가족, 친구들은 오랜 시간 악몽과 같은 고통의 굴레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대부분 ‘법적 안정성’이라는 원칙 아래 공소시효를 도입하고 있다. 사건 관련 증거가 훼손되는 등 증거 능력이 휘발돼 이로 인해 피의자가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중범죄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연방법상 사형 구형 가능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으며, 영국은 경범죄에만 공소시효가 있다. 일본 역시 살인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없앴다.
21년 전인 2001년 대전의 한 은행에서 벌어진 강도살인 사건의 용의자 2명이 지난 25일 체포됐다. 사건 현장 유전자(DNA)와 일치하는 인물들로 알려졌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제한된 수사 역량 속 현재 사건에 허덕이는 경찰이 끈질긴 수사를 펼칠 현실적 이유가 없었을 테다. 보다 적극적인 피해자 인권 보호와 사회적 정의 실현을 위해 이제 살인사건 외에 반인도적ㆍ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폐지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2022-08-2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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