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낙태 피난처/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낙태 피난처/임병선 논설위원

임병선 기자
입력 2021-12-09 20:32
수정 2021-12-10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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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임신 34주째 태아가 제왕절개로 태어났으나 인천의 한 병원 책임자가 물에 담가 죽였다. 그는 저세상으로 떠난 태아를 의료폐기물과 함께 불에 태워 이달 초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피고에겐 살인죄가 적용됐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통해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24주 이전을 태아로 봤다. 그 뒤로는 엄연한 사람으로 봐 살인죄로 처벌했다. 우리 대법원은 임부에게 규칙적인 진통이 수반되는 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40주가 돼도 진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임신중절 시술한 의사를 처벌할 수 없었다.

2019년 4월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낙태를 일률 금지하고 형벌을 부과하는 낙태죄 조항이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해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훼손하는 헌법불합치 상태에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회가 낙태 가능한 기간을 설정하고, 일정 기간은 사회경제적 사유를 따지지 않고 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입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국회가 시한인 지난해까지 입법을 완료하지 않아 낙태죄가 ‘붕 뜬’ 상태라 지금은 임신 기간에 관계없이 중절시술이 가능하다.

국회가 눈치 보느라 그렇게 됐지만 낙태할 권리만큼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사안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왜 그렇게 연방대법원을 보수 우위로 만들려고 안달복달했는지 돌아보면 된다. 보수 성향이 3분의2를 차지하는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대부분 금지하는 미시시피주 법률에 대한 판결을 통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시시피주는 낙태권을 전면 제한했다는 평가를 받은 텍사스주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낙태 제한에 나섰다. 아칸소주도 비슷한 법을 만들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현저히 제한하는 판결을 내리면 22개 주가 비슷한 법을 도입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렇다 보니 ‘원정 낙태’가 늘어 다른 주의 낙태 클리닉을 검색하는 홈페이지(※사진※)가 있을 정도다. 40여곳의 병원과 낙태 옹호론자, 주의원 등으로 구성된 ‘캘리포니아 낙태 미래위원회’가 주 경계를 넘어오는 임부들에게 여행비용, 숙박, 보육서비스는 물론 빈곤층에겐 비용을 보전하는 권고안을 주정부에 제출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낙태 문제로 지칠 대로 지친 여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캘리포니아 병원 다수는 낙태를 원하는 텍사스주 여성들을 환대하는데 아예 주정부 예산으로 뒷받침한다니 ‘낙태 피난처’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2021-12-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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