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 4위 전력의 러시아 함대를 궤멸시킨 일본이 자신의 식민지인 필리핀 군도에 대해 관심을 가질까 우려했고, 영국은 1902년에 맺은 제1차 영일동맹을 갱신해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제1차 영일동맹은 양국이 러시아를 견제하면서 영국은 중국에 대한 이해를,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이해를 서로 용인했다.
태프트 장관은 그해 7월 27일 도쿄에서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를 예방한 뒤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하는 내용의 의견을 나눴다. 며칠 뒤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태프트와 가쓰라 대화를 확인했다’는 답을 받아 8월 7일 가쓰라 총리에게 전달됐다.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의 전말이다.
이 밀약은 1924년 역사학자 타일러 데닛이 이 메모를 발견, 논문으로 발표했는데 ‘미일의 외교적 흥정’이라고 했다. 1950년대 말부터 두 국가의 공식적인 협약이나 협정이 아닌 만큼 국제법상의 구속력이 없다면서 각서, 기록, 합의된 비망록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문제는 이 ‘밀약’으로 일본은 국제적으로 조선 지배를 인정받았다고 판단하고, 그해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하는 을사조약을 체결해 식민지 지배의 포석을 깔았다는 점이다.
‘대한제국의 밀사’로서 미국으로 건너가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려고 애쓰던 이승만은 가쓰라ㆍ태프트 밀약이 폭로되자 미국이 한국을 일본에 팔아넘겼다고 판단했고, 이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의심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1954년 7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했지만, 공동성명을 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밀약도 영향을 미쳤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지난 12일 만나 “미국이 승인해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다”고 말했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누구는 100년 전 일이라도 해야 할 말이 아니냐고 하고, 누구는 외교적 관점에서 부적절했다고 한다.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인식을 챙겨야 할 때다.
2021-11-15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