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구석기 비너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구석기 비너스/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1-06-29 17:22
수정 2021-06-30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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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실에선 다양한 모습과 재질의 주먹도끼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먹도끼는 140만년 전 나타난 구석기시대 대표 석기로 오랫동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1980년대부터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기 시작해 지금은 우리나라가 ‘주먹도끼의 나라’로 불린다.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한 전시에도 이 방에서 오래 머무는 관람객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모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는 현생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하는 학명이다. 특별전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바로 옆 상설전시관의 선사실과 다를 것 없는 구석기시대다. 그런데 700만년 전의 샤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이후 인류가 분화하는 과정을 화석 복제품으로 보여 주는 첫 번째 방에 들어서면 갑자기 눈이 환하게 열린다. 전시의 주인공이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별전에서는 다양한 ‘구석기시대 비너스’도 만날 수 있다. 구석기 비너스를 전시실 안내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2만 6000년 전 무렵 기후는 더 추워지는데, 이 시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비너스는 나체 상태로 머리, 다리가 축소되고 늘어진 가슴, 과장된 배와 허리, 엉덩이 등이 특징이다. … 다수 연구자는 비너스가 다산, 풍요, 생식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전에는 구석기 비너스를 대표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도 나왔다. 1909년 오스트리아 다뉴브 강가의 빌렌도르프에서 철도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됐는데, 출품된 비너스는 오스트리아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원본을 복제한 것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유럽 사람보다 불교 조각이 친숙한 동양 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는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소라처럼 꼬아 올린 비너스의 머리 모양에서 누구나 절에 가면 쉽게 만나는 여래의 머리 모습을 떠올린다. 2017~2018년에는 전곡선사박물관이 ‘구석기 비너스가 부르는 노래’라는 특별전으로 글자 그대로 특별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구석기 비너스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히는 작업도 불교미술 연구가 활발한 동양에서 결정적 진척을 이룰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구석기 비너스를 대모지신(大母地神)으로 보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안목도 설득력 있다. 생산과 풍요의 어머니로 생명과 창조의 어머니인 대모지신은 원초적 신앙의 대상이다. ‘보주’라는 개념으로 생명의 무한 확산을 설명하는 그는 비너스의 머리와 여래의 나발이 응축된 생명력을 상징하듯 비너스의 둥근 몸체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주먹도끼가 그랬듯 갑자기 우리 앞에 비너스가 나타날 날을 기다린다.

2021-06-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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