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추상미술 화가 중 하나인 김환기(1913~1974)의 1971년 작 ‘우주 05-IV-71 #200’(이하 ‘우주’)은 디스크에 이은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기 전 뉴욕에 머물며 남긴 대표 작품이었다. 254×254㎝ 크기로 김환기의 작품 중 유일한 두 폭 대작이었던 ‘우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가 갖고 있는 세계관과 미학적 지향, 삶의 서사 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전면점화’라고 표현되는 김환기의 후기 그림은 과거 자신의 추상 경향과 달리 선도, 면도, 형상도 아예 없다. 오직 수없이 많은 점으로 그 깊이를 더해 갔다. ‘우주’는 그 절정에 있다. 우주는 1969년 인간의 달착륙을 직접 목도한 이후 그가 천착한 주제이자 소재였다. 작품 속 빼곡한 별들은 그 하나하나가 웅대한 우주이며, 그 우주들은 각각의 질서를 통해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흘러간다. 자연스레 형성됐을 커다란 중심이 양쪽에 보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숱한 우주 자체가, 혹은 우주끼리 모여 만든 크고 작은 중심들이 있다. 그 중심들 또한 자세히 보면 그저 무(無)를 나타낼 뿐이다. 없음, 그 자체가 광대무변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인간에 대한, 세계에 대한, 인류사회에 대한 김환기의 회화적 메타포이자 예술적 서사였음을 알 수 있다.
‘우주’는 지난 23일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8800만 홍콩달러(약 132억원)에 낙찰됐다. 크리스티 홍콩 측이 ‘신원 미상의 낙찰자’라고만 밝힌 이는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153억원을 들여 ‘우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경매 최고가 국내 작품 목록 1~10위에 9위(이중섭의 ‘소’)를 제외하고 모두 그의 작품으로 늘어서게 만들었다. 천석꾼의 아들이면서 예술을 위해 기꺼이 부를 멀리했던 김환기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라는 안온한 자리도 내팽개치고 파리로 뉴욕으로 떠나 경계인이자 예술인의 삶을 택했다. 정지용, 김광섭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하고, 이상의 전 부인과 기꺼이 재혼을 택했던 그는 일찌감치 우주 속 한 점 별이 됐다. 자신에 대해 점점 높아지는 발밑 세상의 평가 앞에 기꺼이 껄껄거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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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