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화(禍)를 부르는 입/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화(禍)를 부르는 입/이동구 논설위원

이동구 기자
입력 2019-08-12 22:42
수정 2019-08-1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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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라는 용어는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들켜 버리거나 감추고 싶은 속마음이 무의식 중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뜻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드러나면 곤란해지거나 간절히 원하는 속마음을 억누르다 보면 이런 실수가 나타난다”고 주장하면서 사용됐다.

최근 한일 간의 경제갈등 속에 기업인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큰 화근이 되고 있다. 의류업체인 ‘유니클로’가 최근 불매운동의 주요 타깃이 된 것도 회사 관계자의 부적절한 말 때문이다. 재무책임자(CFO)가 도쿄에서 열린 결산보고회에서 “한국의 불매운동 영향력은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등 한국 소비자들을 폄하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국내에서 연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일본 화장품회사 DHC는 자회사의 시사프로그램에서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 조센징은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말들을 쏟아 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혐오한 ‘혐한기업’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분노 지수는 오를 대로 올라 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부적절한 처신도 소비자의 공분을 샀다. 임직원 700여명이 참석한 사내 월례조회에서 현 정부를 비난하고 아베를 치켜세우는 내용의 유튜버 동영상을 틀었다가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고, 자신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옛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을 한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행동거지와 말투, 글쓰기 등에 그 사람의 됨됨이가 투영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실수를 영어로 ‘tongueslip’이라고 한다. 혀가 미끄러지면 말이 잘못 나온다는 의미이지만, 정신이 잘못돼 있기 때문에 말이 그렇게 나온 것이라 여긴다.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심리적 힘 때문에 말실수가 생겨난다고 믿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으로 대응하는 것은 단순히 말실수를 비난한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을 내뱉는 것은 평소 그들의 마음가짐이나 생각들이 그런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곧 그 기업의 ‘윤리성’과 닿아 있기 마련이다. 부적절한 말을 쏟아낸다면 그 기업은 평소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기업 윤리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이런 부적절한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에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통령과 총리 등이 부적절한 말들을 자주 한다면 세계인은 당연히 그 국가나 국민의 품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혀가 모든 화(禍)의 근원”이라는 격언은 동서양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yidonggu@seoul.co.kr
2019-08-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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