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불문하고 의적(義賊)과 관련된 실화나 전설은 모두 갖고 있다. 우리에게 홍길동과 임꺽정이 있다면 일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에 반발한 ‘이시카와 고에몬’이 있고 중국에는 ‘양산박’, 영국에는 ‘로빈 후드’가 있다. 프랑스에는 1800년 후반에 나타난 ‘아르센 뤼팽’이란 도둑이 유명하다. 그들은 졸부나 사회 지도층만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했으며 그들의 위선까지 폭로해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물을 탐내거나 제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훔친 재물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준다. 그리고 훔친 재물의 원래 주인들과 권력자들을 혼내 주는 등 정의를 대신 실천해 줬다. 부패한 권력이 민중을 괴롭히거나 극심한 빈부격차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주로 의적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미화된 부분도 많을 것이다.
최근 절도 혐의 등으로 경찰에 붙잡힌 조세형(81)씨는 대도(大盜)로 통했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 초까지 부유층과 유력 인사들의 집을 드라이버 하나로 뚫고 들어가 물방울 다이아 같은 귀중품을 털었던 것으로 유명세를 탓다. 훔친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한때 의적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져 강남부자들과 권력자들에 대한 반발감이 팽배하면서 일시적이나마 그를 의적으로 믿고 싶었던 것이다.
80대 노인이 된 조씨가 이번에 훔친 돈은 불과 몇 만원. 젊은 날 대도니 의적이니 불렸던 이름값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새 삶을 살아 보기도 했다지만, 이후 수시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사법처리 횟수만 이번이 16번째라고 한다. 경찰에서 “살기 어려워 훔쳤다”고 진술했다니 인간적인 연민 또한 없지는 않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고치지 못한 그의 삶이다.
2019-06-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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