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오가던 이 공간은 2009년 1월 20일 새벽을 기점으로 ‘죽음과 슬픔의 공간’으로 뒤바뀌었다. 2004년 민자 역사로 대변신한 용산역은 그 전조였다. 자본의 이익 앞에 누군가의 남루한 터전은 보존 가치가 없었다.
용산역 주변 개발 철거에 내몰린 세입자 상인들은 남일당 망루로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농성 시작 하루 만에 벌어진 경찰 진압에 의한 충돌은 화재로 이어졌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잃었다. 비극적인 참사였다.
과잉 진압 문제, 용역업체와 경찰의 결탁 등 논란이 컸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에게 어떤 형사책임도 묻지 않았다. 검찰은 재판에 필요한 수사기록 열람, 등사를 거부했다. 재판 또한 불공정했다. 재판부는 철거민 측이 신청한 항고와 재판부 기피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당시 ‘이명박 청와대’는 경찰에 경기 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을 활용하라는 이메일 지시를 보냈고, 실제 경찰사이버수사대 900명을 동원해 여론전을 펴기도 했다. 사건의 은폐, 조작에 경찰, 검찰, 사법부, 청와대 등이 동원되고 공조한 전형적 국가폭력이었다.
꼬박 10년이 흘렀고 촛불 정부가 들어섰지만, 용산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로 현장을 지휘한 김석기(현 자유한국당 의원)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의 과잉 진압 때문이라 발표하며 경찰 사과를 ‘권고’했다. 그러나 공항공사 사장,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하는 김 전 청장은 이 같은 권고에도 최근 한 방송에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층 빌딩 숲으로 상전벽해된 용산역 앞에서 10년 전 참사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도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도시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곳곳에서 중장비 소리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이 없다면, 또 자본과 개발의 탐욕이 여전하다면 비극적 제2의 용산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우리는 관련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youngtan@seoul.co.kr
2019-01-21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