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기무사의 도·감청/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기무사의 도·감청/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8-07-31 20:52
수정 2018-07-31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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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년)는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국가안보국(NSA)에 맞서 싸우는 한 변호사(윌 스미스)의 이야기다. NSA는 테러리즘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장 없는 도청을 허용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했고,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을 제거한다. 우연히 피살 장면이 찍힌 테이프를 갖게 된 주인공 윌 스미스를 인공위성으로 감시하고, 부인과의 사적 대화까지 도청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든 정보기관의 타깃이 되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터져 나오는 우리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과 도·감청 관련 뉴스를 보면 마치 이 영화가 재현된 듯한 느낌이 든다. 안보를 명분으로 정보기관의 감시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사욕을 위해 사용될 때 얼마나 폐해가 큰지를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 권한을 무한대로 늘리고자 하는 정보기관들의 속성은 영화 속 NSA나 우리 기관들이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2년 전 박근혜 정부는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 국정원이 통신사 협조를 받아 카카오톡이나 휴대폰 메시지를 감청할 수 있도록 한 테러방지법을 만들었다.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법원 허가를 받도록 했지만, 법안 시행 이후 감청집행 건수가 83%나 증가했다고 한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는 촛불 정국에서 작성했다는 계엄 문건 파문에 더해 최근 민간인과 정치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사찰과 도·감청을 벌여 온 의혹까지 불거져 파장이 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까지 감청했다고 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기무사가 군 전화에 대한 감청 권한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대통령의 대화까지 엿들을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기무사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계엄 문건도 자신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무소불위 의식의 산물일 듯싶다.

기무사 간부들은 올 초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손을 씻는 이른바 ‘세심’(洗心) 의식을 가졌다. 구태를 반성하고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국회에서 이석구 사령관과 수하 장교가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맞선 장면은 그 다짐이 허구란 사실을 확인시켰다. 기무사의 권력이 국방부 위에 있다고 시위하는 듯해 볼썽사나웠다. 기무사는 1949년 육군 방첩대로 출발해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청명계획’을 폭로해 불법사찰 의혹이 터졌을 때 이들은 개명과 함께 개혁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젠 국민으로부터 개혁을 넘어 해체 압력까지 받고 있다. 다 사필귀정이다.

2018-08-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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