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진안 가야와 운봉 가야/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진안 가야와 운봉 가야/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7-06-02 22:38
수정 2017-06-0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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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라면 흔히 낙동강 하류의 연맹체 국가를 연상한다. 하지만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드러난 고고학적 증거는 이런 상식과는 다르다.

전북 동부의 진안고원에서 가야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것은 1993년이다.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의 진안고원은 무주·진안·장수에 걸쳐 있다.
이 지역에서는 300기 남짓한 가야계 고총(高塚)이 확인됐다. 특히 200기의 고총은 장수에 몰려 있다고 한다.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정상부에 자리 잡은 직경 20m 안팎의 대형 무덤들이다. 이런 입지는 무덤 주인의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다. 학계는 영남 지역의 가야묘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른바 ‘진안고원 가야’가 이 지역에서 상당 기간 가야문화를 유지하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진안고원에는 80곳 남짓한 봉수가 장수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충남 금산과 전북 남원, 무주에서 시작된 여러 갈래의 봉수는 모두 장수에서 만난다고 한다. 장수는 도읍에 해당하는 정치적 중심지였다.

백두대간 산줄기의 서쪽에 해당하지만 진안고원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호남의 동부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는 운봉고원도 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 전북 남원에 해당한다. 2010년 남원 운봉면 월산리의 가야계 M5호분에서는 중국계 청자인 계수호(鷄首壺)가 수습됐다.

닭의 머리 모양을 닮은 계수호는 백제왕이 지역 맹주들에게 내린 최상급의 위세품(威勢品)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익산 입점리, 공주 수촌리, 천안 용정리 등 백제 영역에서만 출토됐다. 여기에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나온 철제 자루 달린 솥도 수습됐다. 이른바 ‘운봉고원 가야’가 백제와 신라를 아우르는 문물 교섭의 중요한 창구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순천을 중심으로 하는 광양, 여수, 구례, 보성, 고흥 등 섬진강 서쪽 전남 동부는 그동안 마한과 백제의 영향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발굴 조사에서는 마한과 백제 사이 가야의 영향이 집중된 시기가 드러나고 있다.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아라가야, 금관가야, 소가야, 대가야의 문화가 확인된 것이다. 대가야의 가야금 명인 우륵이 지은 12곡 가운데 달기(達己)와 물혜(勿慧)가 전남 여수와 광양이라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있다.

가야 제국(諸國)은 한반도 남쪽 해안부터 중부 내륙 지역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었다. 그것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까지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며 ‘가야사 복원’을 주창한 역사적 근거이기도 하다.
2017-06-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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