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가정방문/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가정방문/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7-02-27 22:51
수정 2017-02-27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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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다. 10년 전쯤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담임 선생님의 편지를 가져왔다. 집을 방문하려는데 편한 날과 시간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약속한 날 수업을 마치고 집을 찾았다. 차와 과일을 냈다. 딸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외국 생활의 어려운 점과 한국의 교육을 궁금해했다. 딸의 방도 둘러봤다. 30분가량 지나 선생님이 일어섰다. 이듬해 딸의 담임 선생님이 바뀐 뒤 또 가정방문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가정방문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상담을 위해 학교에 간 적이 있다.
1970년대엔 가정방문은 비교적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교사가 학생의 가정 형편과 주변 환경 등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생활지도의 한 방편으로 자리 잡았었다. 가정과 학교, 중요한 두 축을 이어 주는 소통 방식이었다.

어릴 적 동네 어귀에서 가정방문에 나선 선생님을 기다리다 맞았다. 부모님과 선생님과 함께 앉아 있던 그 시간은 참 길게만 느껴졌다. 생각하면 그나마 사제(師弟)의 정이 묻어나던 시절이다. 당시 시골에도 영화 ‘선생 김봉두’(2003년)에서처럼 학부모로부터 계란 몇 줄 받은 선생님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가정방문은 1980년대 사회 부조리의 하나로 낙인찍혔다. 치맛바람과 함께 돈봉투와 연결된 탓이다. 학교에 따라 교사가 가정방문을 나서려면 ‘교장에게 미리 통보, 허락을 받은 뒤’라는 조건을 달았다. 교육 당국도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심하게 규제했다. 사실상 금지다.

가정방문은 사라졌고 잊혔다. 세상의 흐름 속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 구성원 간의 인식도 변했다.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힘들고 번거로운 부담으로 여겼다. 내켜 하지 않았다. 가정방문의 필요성을 나름 인식하면서도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리지 않은 이유다.

가정방문이 되살아났다. 학교와 가정의 가교, 학부모의 교육 참여라는 순수한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다음달 1일부터 의무교육 과정인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이틀만 무단결석하면 출석을 독촉하고 필요하면 가정방문도 할 수 있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학교 및 가정폭력을 막기 위한 조치다. 가정방문의 첫 법제화다. 지금껏 행정 지침으로만 다뤄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교사들의 책무가 커졌다. 가정방문의 성공이 교사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학생들에 대한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한 김영란법은 오히려 방패막이다. 당당할 수 있다. 읍·면·동을 비롯한 경찰 등 지역 사회의 지원이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교육이 학교 테두리에서만 이뤄지지 않아서다. 가정방문이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7-02-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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