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연도의 문화재적 가치/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연도의 문화재적 가치/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7-01-04 23:20
수정 2017-01-05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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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서 연옥(煉獄)이란 천국으로 가기에는 부족하지만 지옥으로 갈 정도는 아닌 영혼이 머무는 곳이다. 그런데 연옥의 영혼은 회개의 기회를 놓친 만큼 자신의 노력으로는 천국에 오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한데, 연옥의 영혼을 위해 가톨릭 신자들이 드리는 기도가 연도(煉禱)다. 요즘에는 위령 기도라고도 부른다.

연도는 한국천주교회의 독특한 기도다. ‘시편’을 비롯한 기도문을 우리 전통 선율에 얹어 노래한다. 남자들이 한 구절을 부르면 여자들이 이어 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다블뤼 주교가 1864년 목판으로 발간한 ‘천주 성교예규’에 벌써 ‘앞소리 ‘계’와 뒷소리 ‘응’을 구분해 시편을 노래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메기고 받는 소리가 이어지는 상여소리와도 닮았다.

연도는 한국 가톨릭의 살아 있는 전통이다. 신자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을 위한 기도에 열성적으로 참여할수록 공덕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신자의 상례에 많은 교우가 한데 모여 연도를 드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쿠테르 신부의 선종(善終)에 ‘신자들이 하루 온 종일, 밤새도록 연도를 바친다’고 일기에 적은 것이 1892년이니 열정적 연도의 역사는 깊다.

연도의 발생은 가톨릭 전래 초기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중국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일찍부터 중국에서는 제사 논쟁이 벌어졌고 교황청은 1742년 금령을 내렸다. 유교적 배경을 가진 조선의 초기 신자들은 뒤늦게 충격을 받았고, 신앙과 제사를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찾아낸 대안이 연도라는 것이다. 결국 제사를 지내지 않는 ‘불효’를 상쇄할 만큼 장례에 정성을 드린다는 것이 연도에 담긴 핵심 의미다.

이런 역사적·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연도는 그동안 특정 종교의 특정 의례로만 치부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국립무형유산원이 최근 펴낸 ‘당진의 무형문화유산’에 지역 천주교회에서 전승되는 연도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반가웠다. 당진이라면 김대건 신부 생가인 솔뫼성지와 다블뤼 주교 유적인 신리성지, 그리고 1929년 세워진 합덕성당 등이 밀집한 내포(內浦) 천주교의 중심지다.

보고서는 ‘당진 지역에서 연도가 성한 이유’로 ‘천주교 박해 이후 순교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의식’을 들었다. 순교자가 많은 지역 특성상 일종의 보속(補贖) 차원에서 망자에 성의를 다하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신(新)연도가 계승의 중심에 서면서 지역 특성을 가진 구(舊)연도가 잊히고 있다는 지적에도 눈길이 갔다. 지역마다 민요가 다르듯 연도 역시 지역 특성이 부각될 때 문화적 가치도 높아진다. 무형문화유산으로 연도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노력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7-01-0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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