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전경련 해체/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전경련 해체/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6-12-30 22:28
수정 2016-12-30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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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일본의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산업정책에 협력하라고 요구하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정변 직후 부정축재 혐의 등으로 구속된 기업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고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사장의 만남에서 전경련은 태어난다. 재계와 군사정권의 유착이란 흑역사의 출발점이다. 그때 만들어진 것이 ‘경제재건촉진회’인데 전경련의 홈페이지는 그 같은 어두운 역사를 감추고 있다.

게이단렌은 전경련보다 15년 앞서 태어난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 전시 경제 통제를 담당했던 경제단체를 재편해 발족시킨 것이 게이단렌이다. 발족 당시의 게이단렌은 군사정권과의 통로 역할을 했던 한국의 전경련처럼 일본을 점령했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와 일본 정부에 경제계의 민원을 전달하는 창구였다. 게이단렌이 맹위를 떨치는 것은 1956년 제2대 회장의 취임과 함께 보수당의 통합에 의해 탄생한 자민당이란 장기 정권이 결합하면서부터다. 게이단렌은 기업을 지키기 위한 보험료의 일종으로서, 자민당에 집행하는 정치 헌금의 중개자를 자처했다. 법률을 만드는 정치가에 약한 관료, 규제의 칼을 쥔 관료에 약한 기업,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기업에 약한 정치인이 ‘철의 3각형’이란 연대 속에 ‘일본주식회사’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경련도 게이단렌과 다를 바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원인을 제공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에서 보듯 재벌들은 보험료처럼 혹은 정치자금처럼 청와대의 지시 한마디에 수백억원을 바친 것이다.

게이단렌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근대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자와 에이치(1840~1931년)에 닿는다. 시부자와는 수많은 기업을 만드는 동시에 ‘재계’도 만들었다. 재계를 통해 출자를 받고 새로운 기업을 만드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본적 ‘재계협조주의’를 낳고, 이것이 게이단렌의 체질로 이어졌다.

게이단렌에 균열이 생긴 것은 2011년이다. 인터넷 통신판매회사인 라쿠텐이 게이단렌의 보수성에 질려 탈퇴한 것이다. 인터넷,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여전히 1340개사를 거느린 거대 게이단렌은 일본 근대화 150년 역사에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종언을 고한 셈이다.

한국은 어떤가. 정경유착의 흑역사를 정리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는가. LG와 KT가 탈퇴를 선언했다. 전경련 해체는 시간문제다. 싱크탱크로 전환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괜한 우환과 불씨를 남기는 일이다. 비록 게이단렌 모방으로 시작은 했지만 시대착오적인 우스꽝스런 옷을 일본에 앞서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완벽한 해체의 선언을 보고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16-12-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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