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수능과 부모의 욕심/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수능과 부모의 욕심/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6-11-16 23:14
수정 2016-11-1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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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딸아이가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치렀을 때다. 시험 뒤 가채점을 해보니 내 기대에 좀 못 미쳤던 것 같다. 외려 아이는 괜찮게 봤다는데 부지불식간에 내가 ‘조금 더 하지’란 뉘앙스로 싫은 소리를 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토라진 딸을 달래느라 며칠 동안 진땀을 빼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하나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치르는 특이한 시험이다. 자녀와 엄마, 또는 아빠가 거의 한몸이 돼 시험 준비에 매진한다. 예전엔 거의 엄마가 자녀와 짝을 이뤘지만 요즘엔 아빠가 짝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녀는 ‘평생을 좌우할’ 대사에 뛰어든 선수, 엄마·아빠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매니저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영양가 높고 머리를 좋게 하는 음식을 해 주는 영양사. 비뚤어지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심리학자. 실력 있는 학원 강사를 꿰고 각종 입시 정보로 무장한 입시 컨설턴트 등등. 그야말로 만능 매니저다. 언론에서도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학부모 매니저들을 위한 각종 정보를 쏟아낸다. ‘고3 자녀를 둔 엄마가 실천해야 할 체크 리스트’, ‘자녀 시험 망치는 부모의 언행 10가지’ 등 매니저를 위한 각종 지침이 많다.

이렇게 한 몸으로 시험 준비에 매달려서 그런지 자녀의 성적은 곧 부모의 성적이 된다. 결과에 따른 기쁨이나 실망, 분노의 수준에 차이가 없는 듯하다. 경우에 따라선 부모의 감정 수치가 아이보다 더 높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나이 든 여자들끼리 모이면 ‘자식 잘 둔 사람이 제일 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SNS에서 돌아다닐까. 그렇다 보니 자녀의 대입 준비에 한 몸이 되는 게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 욕심을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자녀의 성적을 엄마는 자신의 ‘인생성적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은퇴를 앞둔 아빠는 자녀의 대학 이름으로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오늘 60여만명의 수험생들이 수능을 치른다. 부모와 한 몸이 돼 달려온 결과를 평가받는 날이다. 내일자 신문 1면엔 어김없이 시험장 문앞에서 발을 구르는 학부모의 사진이 등장할 것이다. ‘혹여 아이가 긴장해 시험을 망치지는 않을까’, ‘아침 먹은 게 탈이 나지는 않을까’, ‘시험이 너무 어려워 ‘멘붕’에 빠지면 안 되는데’. 아이를 기다리며 이렇게 걱정하고 기원하는 엄마의 눈빛은 매년 보는데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하지만 간절함이 깊다고 아이가 시험을 더 잘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부모의 지나친 기대로 인한 아이의 강박이 시험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좀 가식적이긴 해도 ‘아무래도 괜찮아’란 태도로 아이를 보내면 어떨까. 어차피 부모 욕심대로 따라오는 자녀는 많지 않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2016-11-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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