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낙태 처벌 논란/박홍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낙태 처벌 논란/박홍기 논설위원

박홍기 기자
입력 2016-10-18 22:42
수정 2016-10-19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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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팀 케인 버지니아 상원의원과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가 지난 4일(현지시간) TV 토론에 나섰다. 케인은 민주당, 펜스는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정치인이다. 낙태 문제는 미국에서 이념 성향을 재는 잣대 가운데 하나다. 가톨릭 신자인 케인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적극 인정하는 반면 개신교를 믿는 펜스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두 후보의 인식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노선과 같다.

토론은 ‘펜스의 밤’으로 불릴 만큼 펜스의 우세로 끝났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케인의 소신 발언은 인상적이었다. “공직자는 자신의 종교관 때문에 타인의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펜스가 강조한 ‘생명의 신성함’을 반대하지 않지만 “여성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주장했다. 가톨릭은 낙태를 금기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1973년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연방대법원은 낙태 권리를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시켰다. 이른바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이다. 이전까지 낙태는 법으로 금지했다. 대법원은 여성이 임신 후 6개월까지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했다. 임신 3개월 이전에는 낙태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가 여성에게 있으며, 임신 4개월이 지났을 경우에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 낙태하지 못하도록 주정부가 규제할 수 있다. 임신 7개월부터는 자궁 밖에서도 생명체로 존중될 수 있는 기간으로 인정해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논쟁이 컸던 대법원의 판례다. 아직도 공화당에서는 낙태 합법화 저지를 위한 공세가 만만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당수의 국가는 임신부의 요청이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낙태에 대해 엄격하다.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유전적·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만 예외적으로 인정될 뿐 나머지는 불법이다. 형법 제269조에는 낙태한 여성을, 제270조에는 낙태를 도운 의료진을 처벌하는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들이 최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낙태 금지 법안을 폐기한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본떠 검은 옷을 입었다.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수술을 시행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강화하는 의료 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낙태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이다. 낙태를 강력하게 처벌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황당한 발상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개정안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미국의 판례조차 검토하지 않은 듯싶다. 권위적인 행정의 전형이다. 낙태 논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2016-10-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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