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날씨 오보와 희망고문죄/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날씨 오보와 희망고문죄/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8-22 20:48
수정 2016-08-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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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셀마는 1987년 7월 15일 오후 고흥반도에 상륙했다. 동북진하면서 한반도를 관통한 셀마는 이튿날 동해안으로 빠져나갔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는 동안 200~300㎜의 장대비도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343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나왔고, 재산 피해는 3913억원에 이르렀다.

애초 기상청은 셀마가 동중국해를 따라 북상해 일본 규슈에 상륙할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후 대한해협을 지날 것이라고 진로를 수정했다. 하지만 한반도에 상륙하고 나서도 기상청은 대한해협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오보에 거짓말이 더해지면서 피해를 키운 최악의 사례다.

기상청은 이후 입만 열면 슈퍼 컴퓨터 타령을 했다.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기상 선진국에는 있는 장비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들도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는’ 현실이 장비의 낙후 때문이라는 주장에 안쓰러운 마음마저 없지 않았다.

기상청의 슈퍼 컴퓨터 1호기는 1999년 도입됐다. 오보는 조직의 존폐를 걱정할 정도의 위기를 몰고 오기도 했지만, 숙원이었던 기상 관측 및 해석 장비를 현대화하는 기회로도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2호기는 2004년, 3호기는 2010년 도입됐다. 지난해 600억원을 들여 도입한 4호기는 올해부터 본격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예보마다 틀린다는 ‘구라청’의 악명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기상청은 슈퍼 컴퓨터 도입 이후에는 ‘사람 탓’을 했다. 날씨 예보는 슈퍼 컴퓨터에 수치 예보 프로그램을 돌려 산출한 뒤 예보관들이 판단한다. 슈퍼 컴퓨터 도입 초기에는 새로운 장비를 운용할 전문가가 부족하니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했다. 장비에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보는 이어졌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전문가를 모셔왔다. 미국 오클라호마 기상대장과 오클라호마대학 기상학과 교수를 지낸 인물을 영입한 것이다. ‘기상청 히딩크’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켄 크로퍼드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당시 “한국은 3면이 바다이고, 산악지대도 많아 날씨가 빠르게 바뀐다. 한국의 날씨 예보는 미국 오클라호마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하곤 했다. 기상청이 스스로 하지 못했던 말을 외국인의 입을 빌려 들려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기상청의 오보는 날씨 예보의 역사에서 태풍 셀마와 다툴 정도로 심각하게 잘못된 예측은 분명히 아니다. 오보라 해도 실제 낮 최고 기온이 예보보다 2~3도 높은 것 정도인 듯싶다. 하지만 열대야가 30일 이상 지속되는 지역이 늘어나면서 국민 대부분이 글자 그대로 찜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내일모레면 떨어질 것’이라던 기온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치솟기를 되풀이하고 있으니 짜증은 두 배가 된다. 그러니 오보죄(罪)에 더해 희망고문죄(罪)까지 물을 수밖에….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8-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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