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민들은 동유럽 공산국가들도 포기한 이 정책을 현 정부가 실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는 모양이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한때 남미 제일의 부국이었다. 그러나 좌파인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 과도한 무상 복지 시책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경제는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주저앉아 버렸다. 외화 고갈로 생필품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국가 파산 위기에 내몰린 건 자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돌지 않아서다. 기업으로 말하면 흑자 도산 상태다. 남미의 또 다른 자원 부국 아르헨티나가 겪었던 전철이다. 아르헨티나는 1920년대 세계 5위권 부국이었다. 하지만 1943년 후안 페론 전 대통령 집권 이래 최근까지 몇 차례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겪었다. 광활한 팜파 대초원의 밀과 소떼, 천연가스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원에 안주하느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지 않은 결과였다.
같은 석유 부국이지만 중동 국가들의 경제 상황은 베네수엘라보다는 낫다. 미국발 ‘셰일 혁명’ 이후 국제 유가 하락으로 중동 산유국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는 응급 수술이 불가피해 보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통원 치료가 가능한 단계다. 사우디도 오일 머니로 국민에게 무상교육과 높은 임금의 일자리를 보장해 왔지만, 관광·금융·물류 등 비(非)석유 부문을 개발해 수입원을 다각화하려는 노력도 기울여 왔다. 언젠가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상은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고 했다. 그의 말의 함의를 살려 사우디는 석유가 남아돌지만 태양광 사업에 투자해 전기 수출까지 계획 중이다.
지난해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늘 자원이 빈약했다. 다만 인접 문명을 흡수하고 해운업을 일으켜 부족함을 메웠을 때는 문화도 경제도 융성했다. 유럽의 부자 나라였던 그리스가 몰락한 건 국민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디폴트 직전까지도 국민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였다. 부패하기 쉬운 공공부문만 마구 늘리는 포퓰리즘이 경제를 거덜낸 것이다.
국가 경제의 성쇠는 자원의 풍족 여부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국민과 함께 이를 대비하는 리더가 있느냐에 달려 있을 법하다. ‘풍랑이 잔잔하면 돛을 수리하고 비 오기 전에 우산을 고쳐야 한다’ 서양 격언이다. 표만 의식해 인기영합 정책에 골몰하느라 미래를 준비하는 데 게을러 보이는 우리 정치권 인사들이 유념해야 할 경구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2016-06-13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