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백마와 김씨 일가/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백마와 김씨 일가/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기자
입력 2016-05-10 20:36
수정 2016-05-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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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궁정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용맹스러운 나폴레옹의 위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왼손으로 말 고삐를 당기며 오른손을 들어 멀리 알프스의 준령을 가리키도록 해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그렸다. 1800년 5월 알프스의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와 오스트리아로 진격하는 상황을 그린 이 그림의 포인트는 앞발을 치켜든 백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마는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백마의 고삐를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쥘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영웅들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이 백마를 탔고, 영화 ‘300’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된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백마를 신성한 동물로 간주해 궁중에서 특별 사육했다고 한다.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백마를 타고 악을 심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민족에게도 백마는 특별하다.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의 탄생 신화에서 백마는 하늘과 땅을 오가며 국조의 탄생을 알리는 영물(靈物) 역할을 맡는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역시 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의 형상이다. 충남 천안에는 천 년 된 백마가 알을 낳아 그 속에서 아기가 태어났고, 7년 만에 성장한 뒤 아기 장수가 돼 마한을 건국했다는 ‘아기 장수 설화’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기대할 수 없이 암담했던 일제강점기에 시인 이육사가 학수고대했던 것은 백마를 타고 나타날 초인이었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행적은 백두산 밀영을 근거지로 삼아 만주 벌판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지휘하며 혁명의 기틀을 쌓았다는 것이다. 북한 혁명화 중에는 당시의 김일성을 ‘백마 탄 김 장군’으로 묘사한 그림이 많다. 스스로 나폴레옹을 꿈꿨는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과 매우 흡사하다. 아니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비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당시 백마가 아닌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고, 백마와 함께 만주 벌판을 호령한 인물은 김일성이 아닌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이었다.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김일성 또한 대중조작을 위해 백마를 동원한 셈이다.

최근 평양의 혁명사적관에 백마를 탄 김정일과 김정은의 사진이 내걸렸다고 한다. 사진 속 부자는 그야말로 순백의 말 등에 올라탄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신들이 ‘백두에서 백마까지’ 혁명 가계의 혈통을 잇는다는 사실을 대중조작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6-05-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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