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경주 발굴 100년 계획/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주 발굴 100년 계획/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6-03-31 18:06
수정 2016-03-3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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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경주 여행을 떠난다면 월성(月城)을 일정에 꼭 넣는 것이 좋겠다. ‘신라 왕궁 발굴 현장’이라는 의미 있는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3월부터 20만 7000㎡에 이르는 월성을 정밀 발굴 조사하고 있다. 월성 내부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오르면 남쪽으로 발굴 현장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습을 드러낸 옛 건물의 흔적에서는 기하학적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고개를 들면 멀리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보인다. 남산(南山)이다. 남산이 왜 남산인지 이곳에 서면 무릎을 치게 된다.

엊그제 지난 1년 월성 발굴의 성과가 공개됐다. 8세기 후반의 밀집 건물터를 확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뉴스였다. 관청 이름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여럿 확인됐고, 흙으로 만든 벼루 파편도 50점 이상 출토됐다. 그럼에도 ‘황금의 나라’에 걸맞은 ‘화려한 유물’은 없었다. ‘보통 사람의 기대’에는 한참을 못 미친다.

발굴의 목적은 유물 수습이 아니라 역사의 복원이다. 월성 발굴의 목적 역시 경주문화재연구소가 밝힌 대로 ‘신라 궁성 역사의 체계적 복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월성은 신라 제5대 파사왕 22년(101) 쌓기 시작해 왕조가 막을 내린 935년까지 궁성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발굴 조사에서 월성이 왕성이라는 것을 입증할 유물이나 유적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내부 두 곳에 4m 깊이의 시굴 구덩이를 팠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 문화층 2개와 고신라시대 문화층 5개를 확인했다. 가장 이른 시기는 4세기라고 한다. 이번에 확인된 밀집 건물 유구는 가장 늦은 문화층이다. 월성 초축 당시 문화층을 찾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다.

이번에 확인된 건물 유구에서는 왕궁의 전각에 걸맞게 정교하게 다듬은 초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건물의 규모는 크지만 왕과 직접 관계가 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심 건물에서 벼루가 대량 출토된 것 역시 행정관청일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삼국통일 이후 왕성이 월성 외곽으로 크게 확장해 나갔다는 학계의 연구 성과와도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경주문화재연구소는 통일 이후 신라 왕궁의 중심이 월성 내부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동궁과 월지 주변뿐 아니라 월성에서 북천(北川)에 이르는 경주 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왕궁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에 확인한 마지막 문화층을 발굴하는 데도 10년은 걸릴 것으로 경주연구소는 보고 있다. 그러니 월성의 정밀 발굴을 마무리하고, 월성 밖의 왕궁 영역까지 단계적으로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경주 발굴 100년 계획’을 세우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6-04-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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