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모란봉과 톈안먼의 간극/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모란봉과 톈안먼의 간극/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기자
입력 2015-12-14 18:00
수정 2015-12-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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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중국의 2차대전 전승절 열병식이 열렸던 광장 성루에서 보기 드문 그림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나란히 섰다. 61년 전 북한 김일성과 마오쩌둥 주석이 섰던 그 자리에.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말해 주는 단면도였다.

북·중 관계에 또다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이번에는 스냅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12~14일 베이징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던 북한 모란봉악단이 이를 전격 취소하면서다. 하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서우두 공항을 빠져나오던 현송월 단장이 굳은 표정으로 귀국길에 오르는 전 과정이 미스터리다. 애초 이번 공연은 서먹했던 북·중 관계의 정상화 신호로 비쳤다.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서열 5위 류윈산 상무위원의 평양행에 이은 ‘공연 외교’ 이벤트였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방중 정지 작업이란 관측도 나왔다.

모란봉악단은 ‘최고 존엄’ 김정은의 친위 선전대다. 까닭에 이 악단의 공연 취소는 우리 걸그룹의 행사 펑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북·중 관계의 난기류를 말한다는 점에서. 악단의 전격 철수 배경은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어렵다. 북·중 양측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다. 다만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게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중국 외교부가 “관련 당사국이 정세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길 바란다”(화춘잉 대변인)고 비판적 논평을 내놓으면서 제기된 추론이다. 중국 측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관람 최고위 인사를 정치국 위원급에서 부부장급(차관급)으로 낮추자 김정은이 결국 오기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와 다른 소수설도 있다. 김정은이 옛 애인이었던 현송월이 언론에 부각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거나, 단원 2명이 이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중화권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 김정일 사망 4주기(17일)를 앞두고 북한이 전국에 애도 기간을 선포하면서 해외 공연도 취소했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어느 게 맞는지는 당장 확인하긴 어렵다. 분명한 건 단순한 ‘공연 결례’를 넘어 북·중 관계의 앞날에 암초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까지 혈맹이었던 북·중 관계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내부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갈수록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 아닌, ‘전략적 부담’으로 여기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탈냉전 기류와 함께 완충지대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드는 데다 김정은 정권 들어 핵실험 등 외교적 돌출 행위가 빈번해지면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후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했다. 중국 5세대 지도부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북·중 관계를 정상적 국가 관계로 치환하려 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철수가 남북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만들지 주목된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2015-12-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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