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슈퍼맨 닥터 전’/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슈퍼맨 닥터 전’/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5-12-11 18:12
수정 2015-12-1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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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닥터 리’.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전문의인 이승복(50) 박사를 동료들이 부르는 별명이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그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에 근접한 체조선수였다. 이 박사는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건너가 체조 선수가 됐다. 재능이 뛰어난 그는 전미대회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1급 선수로 자랐다.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훈련하던 그는 그러나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루 훈련 중 도약했다가 턱부터 거꾸로 처박히는 사고를 당했고,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것이다. 꿈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동안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그를 구한 것은 의학이었다. ‘내 몸이 왜 이럴까’라는 궁금증에 의사들에게 물어보고, 의학서적을 읽기 시작하면서 ‘의사가 되겠다’는 제2의 꿈을 찾게 됐다. 그는 재활훈련에 힘을 쏟아부었고, 공부를 시작했다.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마침내 다트머스의대에 진학했다. 이어 하버드의대 인턴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존스홉킨스병원 재활의학과 수석레지던트가 됐다. 체력이 약한 그는 거기까지 가려고 친구들보다 몇 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는 병원에서 ‘희망의 아이콘’이다. 동료 의사들은 재활훈련을 포기하려는 환자가 있으면 그를 호출한다.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이 박사의 스토리가 재현될 듯싶다. 지체장애 1급인 서울 동성고 3학년 전병건(18)군이 연세대 의예과에 수시합격했다는 소식이다. 태어날 때부터 근무력증을 앓아온 전군은 혼자 걸을 수도, 연필을 오래 잡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학교에서 전교 1, 2등을 다퉜다. 필기가 어려워 최대한 집중해서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도 한때는 불만 가득한 반항아였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아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수백 번 전화해 사정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전군은 자기소개서에 “고2 때까지 정확한 진단도 못 받고 살아왔다. 의사가 돼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썼다고 한다. 이 박사가 절망을 딛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같다.

전군의 합격은 희망을 갈망하는 장애인들의 목을 축여 주는 단물 같은 소식이다. 지독한 불황에 떨고 있는 서민들의 언 손도 조금이나마 녹여 줄 것 같다. 대학 측의 결단에도 박수를 보낸다. 연세대는 ‘1급 지체장애인도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만큼 사회의식이 진보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10여년 전 이 박사가 크게 화제가 됐을 때만 해도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시선이 많았다. 합격은 또 다른 시작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정이 전군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슈퍼맨 닥터 전’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2015-12-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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