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월산대군과 신동주/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월산대군과 신동주/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5-10-13 18:06
수정 2015-10-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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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될 운명의 세자는 모두 27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12명의 세자가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권력의 비정함으로 이들은 어린 나이에 삼촌이나 이복형한테 죽거나, 아니면 동생에게 밀려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미치광이 짓으로 아버지 영조에게 미운털이 박혀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를 비롯해 의안대군, 양녕대군 등이 왕이 되지 못하고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세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월산대군은 두 번이나 왕이 될 기회를 놓친 비운의 왕세자다. 세조의 장남인 아버지 의경세자가 일찍 죽으면서 장남인 월산군(4살)이 응당 보위를 계승해야 했지만 임금이 되기에는 너무 어려 그보다 4살 더 많은 삼촌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도 임금이 된 지 불과 열여섯 달 만에 승하하면서 월산군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왕실의 어른인 정희왕후(세조의 부인)의 고심이 시작됐다. 실록에서 정희왕후는 “원자(예종의 아들 제안군)는 포대기 속에 있고, 월산군은 본디부터 질병이 있다. 자산군은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 세조께서 매양 그의 기상과 도량을 일컬으면서 태조에 견주기까지 하였으니, 그로 하여금 주상(主喪)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며 왕으로 자산군(성종)을 택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정희왕후의 손자 셋 중 장손인 월산군은 처음에는 강보에 싸여서, 그다음에는 병약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왕이 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월산군이 동생 자산군(성종)에게 밀린 것은 자산군의 장인이 당대의 실세이던 한명회였기 때문이다. 정희왕후로서는 어린 손자가 명실상부 왕이 되기까지 보호막이 필요한데 바로 그 적임자가 한명회였다.

최근 롯데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한국과 일본에서 소송을 하면서 ‘형제의 난’ 2라운드가 시작됐다. 롯데그룹의 계승자로 보였던 장남이 차남 신동빈 롯데회장에게 밀린 것은 경영상의 성과 차이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인 어머니가 차남에게 힘을 실어 준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권력 향배의 캐스팅을 쥔 그들의 어머니도 정희왕후와 같은 고심을 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알 수 없겠지만 능력 있는 차남이 자신과 같은 일본 재계 거물의 딸인 일본인 며느리까지 맞이했다면 한국인 첫째 며느리를 맞이한 장남보다 더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월산대군은 훗날 어떤 의심도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의 시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라/무심한 달빛만 싣고/빈 배 저어 오노라’를 읽노라면 그의 헛헛한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시대와 달라 동생에게 밀려난 형은 시(詩)를 지으면서 초야에 묻혀 살지 않는다. ‘소송’으로 복수의 칼을 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5-10-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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