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주병철 논설위원

주병철 기자
입력 2015-08-03 23:50
수정 2015-08-0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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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 박인비의 스윙이 골프 애호가들에게 회자된 적이 있다. 교과서적인 정통 스윙을 추구하는 골퍼들은 박인비가 승수를 쌓아 갈수록 그의 특이한 스윙에 주목했다. 모든 스윙이 4분의3으로 풀스윙하지 않고, 천천히 들었다 툭 던지면 쭉 뻗어 나가는 비거리에 놀랐다. 박인비의 스윙을 노자(子)가 설파한 대교약졸(大巧若拙·큰 솜씨는 마치 서툰 것처럼 보인다)로 비유했다. 로버트 첸버스라는 골퍼는 ‘두서없는 골프 이야기’라는 책 서문에서 “레슨서는 바이블과 다르며 누구에 대해서도 복음을 전해 줄 수 없다. 성격, 체형, 연령, 운동신경, 사고력 등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인비는 손목을 제대로 접을 수 없는 자신의 독특한 신체 조건 때문에 풀스윙을 할 수 없고, 그래서 편안하면서도 임팩트(타점)가 정확한 스윙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팔자(八字) 스윙으로 유명한 짐 퓨릭도 독학으로 배워서 남 보기에는 어색하게 보이지만 임팩트가 정확하기에 여러 번의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박인비나 짐 퓨릭이나 어려운 여건에서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은 건 남모르는 노력 때문이다. 손재주가 좋은 한국인의 골프 유전자(DNA)가 한국 여자 골퍼들이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우승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얘기도 있지만 결국은 근성과 집념이다. 박인비가 한때 극심한 슬럼프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한 위기를 극복한 것도 강한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로 골퍼 최경주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아침 9시에 골프장에 가서 12시까지 쉼 없이 연습하고 점심 후 1시부터 5시까지 끝도 없이 공을 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고독과의 싸움이라는 얘기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플레이를 한다고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박인비가 3일(이하 한국시간)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코스(파72)에서 끝난 LPGA 투어 시즌 4번째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역전극을 펼치며 우승컵을 안았다는 소식이다. 세계 여자 골프 사상 7번째 ‘커리어 그랜드슬램’(시즌에 상관없이 선수 생활 중 US여자오픈 등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의 대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다. 1998년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 경기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해 외환위기로 힘든 국민들에게 힘이 돼 준 그때의 모습 못지않다.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박인비는 ‘박세리 키즈’ 중 대표 주자다. 박인비가 ‘제2의 박세리’가 됐듯이 ‘제2의 박인비’를 꿈꾸는 박인비 키즈들이 많다. 이들 옆에는 든든한 아빠 캐디, 엄마 매니저가 있고, 데이비드 레드베터 같은 세계 정상급 레슨 프로들이 있다. 제2, 제3의 박인비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박인비의 기록 달성이 더 의미 있고 값져 보인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5-08-0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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