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만성 분노사회/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만성 분노사회/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5-07-12 18:00
수정 2015-07-12 23:3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신문 사회면 뉴스에도 유행이 있다. 시대마다 주목받는 생활 속 사건이 따로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어이없는 사건이 틀림없는데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은 일들이 많아진다.

‘보복 주차’ 이야기가 인터넷을 시끄럽게 달군다. 앞뒤 나란히 차 2대를 주차하게 된 빌라 건물의 주차장. 이전에 주차 시비가 있었던 사람의 차량을 보자 보복 심리가 발동한 남성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차를 그 앞에 세워 출입을 막았다.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버티다 10시간 만에 차를 빼 줬고, 법원은 이 남성에게 6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단순 가십성 뉴스에 설왕설래가 길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더는 별난 사람들의 상식 밖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운수가 나빠 불가항력으로 빚어진 일이 아니라 작심(作心)한 보복 행위들이 광범한 사회문제로 연결되는 현실이 체감된다. 최근 경찰 당국이 대국민 캠페인까지 하고 나선 보복 운전은 대표적 사례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보복 운전 신고 건수는 지난해 대비 올해 1.6배나 급증했다. 도로 위에서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양태도 갈수록 난폭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에는 보복 운전을 흉기를 동원한 협박죄로 처벌하는 판결이 나왔다.

만성 분노사회가 아닌가 싶다. 현대인들의 분노 양태를 분석한 최근의 저술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분노란 우리 신체에 가해진 반응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사실이다. 분노가 넘쳐 폭발하는 만성 분노사회라면 해결의 실마리를 그 사회의 관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만성 분노사회의 구성원들은 분노의 씨앗을 찾으려고 항상 두리번거린다는 경고가 덧붙는다. 분노가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는 의심이 섬뜩하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자신과 화해한 사람만이 세계에 대한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과 스스로 화해하지 못하는 상황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다. 개인의 행복한 기억이 우울과 불안을 치유한다는 학설은 꾸준히 나온다.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에 소개된 실험. 혼자 격리된 공간에서 우울 반응을 보이던 수컷 생쥐는 지난날 암컷과의 행복한 기억이 저장된 뇌 세포에 빛을 쬐어 주자 놀랄 만한 치유 효과를 보였다. 격리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생쥐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행복한 기억이 보상 효과를 일으켰다.

분노가 밀고 나가는 사회는 모두에게 잠재적 위협이다. 분노를 법으로 다스리고, 법이 관여하는 분노의 영역이 넓어지는 사회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도를 넘은 개인의 분노에 우호적 시선을 보내는 사회는 없다. 분노장애를 벗어나려면 뇌 속에 행복한 기억을 저장하는 일이 급하다. 너무 쉬운 해답이 너무 멀리 있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7-13 31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