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미전(眉篆)/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미전(眉篆)/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4-11-20 00:00
수정 2014-11-20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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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질수록 우리 옛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아닌 게 아니라 강원도 삼척에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다. 미수 허목(眉? 許穆·1595~1682)의 삼척부사 시절 글씨다. 척주(陟州)는 짐작처럼 삼척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전서체(篆書體)로 크게 씌어진 ‘척주동해비’ 다섯 글자는 조형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추상화인 듯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역시 전서체인 비문의 작은 글씨에도 한 글자 한 글자에 창조정신이 짙게 배어있다.

척주동해비는 글씨의 아름다움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신이(神異)한 능력을 발휘한 설화로도 유명하다. 허목 부사 당시 삼척은 파도가 읍내까지 밀려오고, 오십천이 범람해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이에 미수가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정라진(汀羅津)에 척주동해비를 세우자 바다가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2002년 태풍 루사가 동해안 일대를 휩쓸었을 때도 척주동해비 탁본을 갖고 있던 집안은 큰 피해가 없었다는 새로운 전설도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답사객이 그렇듯, 많은 삼척 사람들이 비석에 새겨진 글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결과일 것이다.

허목은 눈썹이 눈을 덮을 정도로 길어 눈썹 미, 늙은이 수 자로 호를 지었다고 ‘기언’(記言)에 밝혀 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도 희고 두터운 눈썹이 남달라 보인다. 근기남인인 허목은 만년에 남인의 핵심인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정치적 소수파에 머물렀다. 예술가로서 허목은 산림(山林)에 머물던 시절 중국의 상고시대 문자를 탐구해 특유의 서체를 만들었는데 세상은 미수의 전서라는 뜻에서 미전(眉篆)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파들은 그의 글씨를 높이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날 허목의 글씨는 적극적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만 22건, 26점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에는 척주동해비의 원본 글씨도 들어 있다. 고려대박물관의 함취당(含翠堂)과 안동 하회마을의 충효당(忠孝堂), 그리고 애국우민(愛國憂民)과 효제충신(孝悌忠信)도 볼만하다.

조선시대에도 그림과 글씨의 경계는 없지 않았다. 그러니 옛 글씨와 현대미술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응로 화백도 조선 후기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제자였기에 문자추상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국립현대미술관이 먼저 나서 추상적 회화의 양상으로 옛 글씨롤 조명하는 노력에 나선다면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4-11-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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