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심심한 천국’이고, 한국은 ‘재밌는 지옥’이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지인이 농담 삼아 한 얘기였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연수 중 그 말의 본뜻을 실감하게 됐다. 필자가 살던 중소도시의 다운타운에서는 저녁 9시만 넘으면 행인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연히 온갖 유흥업소들과 뒷골목 포장마차까지 흥청거리는, 불야성(不夜城) 서울의 밤 풍경이 오버랩됐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영문 슬로건이다. 원어민 전문가들로부터 엉터리 영어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다만, 쉴 새 없이 뭔가 큰일이 터져 심심할 겨를이 없는 한국적 상황을 상징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 ‘다이내믹 코리아’에 사는 우리는 다른 나라 시민들에 비해 아직도 상대적으로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엊그제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발표된 2013 세계 웰빙(삶의 질)지수 순위에서 한국이 135개국 중 겨우 75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 목표, 사회관계, 경제 상황, 공동체의 안전·자부심, 그리고 건강 등 5개 항목에 대한 삶의 질 체감지수를 측정한 결과다. 주관적 측정인 만큼 오차가 클 수 있다지만, 구미 선진국은 물론 같은 아시아국가들에 비해서도 순위가 낮게 나왔다. 특히 경제상황을 제외한 항목에서 내전 중인 이라크 국민에 비해서도 현실이 고통스럽거나 고전 중이라고 응답한 한국인이 많았다니 충격적이다.
이런 결과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물질적 풍요를 충족시키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소득이 높아지는 것과 정비례해 행복감도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미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이 이론을 처음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의 그것보다 오히려 높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로 위안 삼기엔 우리의 현실은 심각하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보고서를 보라. 기대수명은 늘어나는데 노인 자살이 증가하는 추세는 뭘 가리키나. 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영세 노인층의 절망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해 인구 10만명당 29명꼴로 자살하는 나라라면 웰빙 못잖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웰다잉’(Well Dying)에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길 빌 뿐이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만든 영문 슬로건이다. 원어민 전문가들로부터 엉터리 영어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다만, 쉴 새 없이 뭔가 큰일이 터져 심심할 겨를이 없는 한국적 상황을 상징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 ‘다이내믹 코리아’에 사는 우리는 다른 나라 시민들에 비해 아직도 상대적으로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엊그제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발표된 2013 세계 웰빙(삶의 질)지수 순위에서 한국이 135개국 중 겨우 75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생 목표, 사회관계, 경제 상황, 공동체의 안전·자부심, 그리고 건강 등 5개 항목에 대한 삶의 질 체감지수를 측정한 결과다. 주관적 측정인 만큼 오차가 클 수 있다지만, 구미 선진국은 물론 같은 아시아국가들에 비해서도 순위가 낮게 나왔다. 특히 경제상황을 제외한 항목에서 내전 중인 이라크 국민에 비해서도 현실이 고통스럽거나 고전 중이라고 응답한 한국인이 많았다니 충격적이다.
이런 결과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물질적 풍요를 충족시키는 데만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소득이 높아지는 것과 정비례해 행복감도 높아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을 뒷받침하는 셈이다. 미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이 이론을 처음 제기하면서 그 근거로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의 그것보다 오히려 높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로 위안 삼기엔 우리의 현실은 심각하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보고서를 보라. 기대수명은 늘어나는데 노인 자살이 증가하는 추세는 뭘 가리키나. 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영세 노인층의 절망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해 인구 10만명당 29명꼴로 자살하는 나라라면 웰빙 못잖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웰다잉’(Well Dying)에도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길 빌 뿐이다.
구본영 이사대우 kby7@seoul.co.kr
2014-09-18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