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검사의 자격, 검찰총장의 철학/박홍환 논설위원

[서울광장] 검사의 자격, 검찰총장의 철학/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기자
입력 2021-04-29 17:18
업데이트 2021-04-3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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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환 논설위원
박홍환 논설위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최근 차기 검찰총장 인선과 관련해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상관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솔직히 그 뉴스에 눈과 귀를 의심하긴 했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자 2~3명을 천거하면 그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자신의 국정철학을 따르지 않는 인사를 임명할 리 없지 않은가.

언론의 해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소 위기에 처해 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카드’ 가능성을 일부러 흘렸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때와는 달리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내 식구’를 심어 검찰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도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 지검장과 김오수 전 법무차관 등 친정권 인사 외엔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는 얘기다.

해석 중 하나가 어긋나긴 했지만 29일 열린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에서는 이 지검장을 제외하고, 김 전 차관, 구본선 광주고검장, 배성범 법무연수원장,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를 후보로 올렸다. 법조 안팎에서는 박 장관이 김 전 차관을 검찰총장 후보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천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 전 차관은 연수원 20기, 구 고검장과 배 원장은 연수원 23기, 조 차장은 연수원 24기로 김 전 차관이 검찰총장에 임명되면 연수원 23기로 후배 기수인 이 지검장은 한 차례 더 검찰총장 후보군에 오를 기회가 남아 있다.

검찰 출신 원로 법조인들은 장탄식을 쏟아냈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 최고위급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검찰을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심산”이라고 쏘아붙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위해 내달리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여권의 검찰개혁 동력이 떨어졌는데, 검찰총장 인선을 계기로 임기 말까지 어떤 식으로든 검찰을 완전히 박살내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박 장관의 국정철학 언급은 그런 뉘앙스로 읽히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 검찰총장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가. 여권은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 전 총장 갈등 국면에서 검찰총장도 행정부의 일원인 만큼 법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윤 전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언급하면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명령·지휘 계통을 완강히 거부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을 마지막까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내 편’이라고 얘기했지만 윤 전 총장은 그렇다, 아니다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원전 수사 등을 통해 대립각을 키웠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대선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온 맥락을 참조하면 공정, 정의, 개혁 등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검찰총장이 그런 국정철학을 거스를 까닭이 없다. 문제는 여권의 내로남불식 해석이다. 여당의 한 최고위원은 지난해 감사원장을 상대로 “국정철학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면 사표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윽박질렀지만 감사원장이 공정과 정의, 개혁 등을 외면했다는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 출신의 한 원로 법조인은 검사와 검찰총장은 국정철학을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찰은 수사를 통해 공익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국정철학을 따르게 되면 수사에 왜곡 현상이 빚어져 오히려 공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 수사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 보면 공직자들의 자료 폐기 등은 그야말로 사소하고, 문제 삼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검사는 이런 불법 사례를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사가 국정철학 등 정무적 해석에 나서기 시작하면 절차적 정의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실제 일부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출금 사건처럼 결과적으로 정의롭다면 절차적 불법까지 서슴지 않는 것 아닌가.

검찰이 불신에서 벗어나 사회 정의의 수호자로서 본래 위상을 되찾으려면 우선 외압과 간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검사, 그리고 검사의 총합체인 검찰의 임무가 사실을 추적해 범죄 여부를 가리는 것이니 검사나 검찰은 정치권력은 물론 검찰 내부까지 포함해 본래 독립적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국정철학의 충실한 이행자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검찰독립·정치적 중립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췄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만 한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정의’는 영원한 것 아닌가.

stinger@seoul.co.kr
2021-04-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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