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정치인을 닮아 가는 관리들/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인을 닮아 가는 관리들/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0-09-16 00:00
수정 2010-09-1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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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논설위원
공직사회가 뒤숭숭하다. 그렇지 않아도 ‘철밥통’소리를 듣더니 외교통상부 특채 파문으로 더욱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됐다. 딸 특채 의혹이 터지자 “요즘 어떤 세상인데….”라며 강하게 부인하던 유명환 전 장관을 TV에서 봤던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비리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와중에도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감옥으로 갔던 정치인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진실이 드러날 때 드러나더라도 ‘오리발’부터 내미는 것이다.

공직자들이 ‘나쁜’ 정치인을 닮아가고 있다. 정치인의 몰염치야 다 알지만 관리들도 결코 뒤지지 않음이 이번 일로 드러났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자리를 즐기는 관리들을 먼 발치에서 한 번이라도 봤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썩었을 줄이야. 친인척들을 보좌관으로 쓰는 국회의원이나 자식에게 공직까지 ‘대물림’하려는 관리 모두 한 통속이지 싶다.

공직사회에서 나랏일보다 자리를 탐하고, 소리(小利) 앞에서도 물불 가리지 않는 이른바 ‘정치관료’들이 설친 지 오래됐다. 전 총리 A씨가 중앙 부처 1급으로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 본적을 호남으로 바꾸도록 한 일은 유명하다. 혀를 내두르게 한 그의 약삭빠른 처세 덕분인지 총리 자리까지 올랐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요직을 맡고 있다. 흔히 정치인은 표를 위해서라면 영혼도 판다고 하는데, 정치관료들은 출세를 위해 영혼은 물론 한술 더 떠 본적까지 ‘세탁’한다.

이들은 학연·지연은 기본이고, 엮을 만한 것이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엮어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다. 전 장관 B씨는 고교 선배인 총리가 테니스를 잘 친다는 얘기를 듣고 테니스 모임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고 한다. 전 부총리 C씨는 고교 후배가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두 번이나 승진에서 물을 먹자 청와대 인사 담당자를 찾아 구원투수 역할을 자청했다.

정치관료들은 초선의원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정치 감각과 처세술을 갖고 있다. ‘영포라인’ ‘서울랜드(서울고-서울대)’ ‘이헌재 사단’이 뜬다 싶으면 거기에 올라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영향력이 있으면 아랫사람이라도 머리를 조아린다. 차관 인사를 앞둔 한 인사는 밤 늦게 청와대 인사라인과 가깝던 후배 집까지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정권 교체에도 살아남는 ‘슈퍼 정치관료’들도 적지 않다. 한 차관은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 청와대 파견근무를 세 정권을 넘나들며 했다. 이쯤 되면 그 놀라운 생존력에 ‘감화’ 받은 후배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한 차관급 인사는 참여정부 임기말 혁신도시로 지정된 고향에서 착공식을 강행해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도록 ‘대못박기’를 했고, 다른 차관은 재임 중 특정 대학에 연구개발비를 몰아주고 퇴임 후 그 대학 교수로 갔다고 한다.

정치관료들이 판치면 공직사회는 병들게 된다. 능력이 있어 장·차관 하면 누가 욕하겠는가. 실세 정치인이 뒤를 봐줘서, 줄서기에 성공해 윗자리에 올라가면 그 조직은 정치 바람을 탈 수밖에 없다. 자신을 돌봐준 ‘누군가’에게 ‘보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청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조직 인사는 왜곡된다. 이익집단을 대표한 ‘누군가’의 입김에 정책은 뒤틀린다. 그 과정에서 부패와 비리가 싹튼다. 정치관료들의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강해 ‘줄서야 성공한다.’는 인식을 퍼트려 너도나도 정치관료의 길을 유혹 받게 된다.

언변이나 감각은 부족해도 묵묵히 뒤에서 일에 몰두하는 참다운 공직자의 사기와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인근 유리창이 모두 깨진다는 ‘깨진 유리창’ 법칙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공직사회도 보다 공정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깨진 유리’ 정치관료부터 솎아내야 한다. 그들은 공직사회를 좀먹고, 궁극적으로 정부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bori@seoul.co.kr
2010-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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