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영화발전기금’이라는 게 있다. 이 기금이 누구의 돈으로 적립되느냐를 가지고 말들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관객이 내고 산업이 적립한 돈’이라고 하겠다. 법령에서 기금은 “입장권 가액의 100분의3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듯이 입장권 가액은 이미 정해진 것(관객이 내는 돈)이고 그 100분의3(산업이 가져갈 돈)을 기금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기금이 없더라도 입장권 가액이 낮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즉, 우리에겐 세금이 아니라 우리 산업계가 적립해 놓은 기금이 제법 있다.
당장 하루 세 끼를 걱정할 시국에 무슨 영화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영화가 하루 세 끼를 책임져 준다. 게다가 세금도 아니고 그동안 적립해 놓은 기금으로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 바람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무너져 내렸다.
영화진흥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와는 소통이 불편할 때도, 원활할 때도 있다. 영화하는 인간들의 자유로움과 공적기관의 경직성이 어찌 똑 떨어지게 손발이 맞겠나.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센 놈’ 기획재정부가 나타났다.
우리 내부에서 적립한 기금마저도 기재부의 허락 없이는 건들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엔 기금집행권한이 해당부처에 있었으나 통합재정법의 시행 이후로는 모두 기재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재난지원금을 풀자고 할 때도 반대하던 기재부다. 그들에게 영화산업에 돈을 쓰자는 것은 언감생심일 뿐이었다. 3차 추경에서 우리의 기금으로 영화창작자들과 산업에 호흡기를 달아 달라고 했던 우리의 주장은 그렇게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코로나 이후의 영화산업은 극심한 변화를 필요로 한다. 다중이용시설이 기반인 영화산업은 환골탈태의 자세와 도전에 임해야 한다. 이 변화와 도전을 기재부의 사고로는 따라올 수 없다. ‘기획재정’과 ‘문화’는 사고의 축이 아예 다르다. 기금의 사용권한만이라도 해당 부처에 넘겨주기를 간곡히 요구한다.
2020-06-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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