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광화문 심야 택시 대화/김상연 사회 2부장

[데스크 시각] 광화문 심야 택시 대화/김상연 사회 2부장

김상연 기자
김상연 기자
입력 2017-11-27 17:46
수정 2017-12-0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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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새벽 도심을 달리는 모든 택시 안에서 어떤 대화들이 오갔는지는 신만이 알리라.
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김상연 부국장 겸 정치부장
개별적 인간은 개별적 택시 안의 풍경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회사를 나오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예전 같으면 그 시간엔 회사 앞에 빈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래서 중국 황제가 시혜를 베풀 듯 골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택시가 안 보인다. 혹시 광화문 네거리 쪽에선 택시가 잡힐까 싶어 찬 바람을 맞으며 100여미터를 걸어 내려왔다. 한참을 기다리다 서대문 쪽에서 빈 택시가 달려오길래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고, 고맙게도 택시가 급정거했다. 안도감도 잠시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왜 이렇게 택시가 없어요, 기사님?”

“손님이 없으니까요. 지금 목동에서 여기까지 한 명도 못 태우고 왔어요.”

“손님이 왜 없죠? 주말인데.”

“몰라요. 그 무슨 법인가 생긴 뒤부터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김영란법(청탁금지법)요? 아, 술자리가 줄어드니까.”

종각역을 지나는데 취객 서너 명이 차도 안까지 들어와 택시를 향해 위태롭게 손을 흔든다. 그들의 딱한 운명을 뒤로한 채 택시 안 대화는 계속된다.

“요즘 택시회사 가 보면 경로당이에요.”

“경로당요?”

“돈이 안 벌리니 젊은 사람들이 택시(운전) 하려고 하나.”

그러고 보니 요즘 젊은 택시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집에 일찍일찍 들어가는 문화가 되나 보네요.”

“그 전엔 한 달에 270만원은 벌었는데 작년 말엔 200 벌었어요. 지금은 170 정도 벌어요.”

“그래도 여론조사 보면 대부분이 그 법 찬성한다는데. 사회가 깨끗해지니까.”

“…택시하는 사람, 식당하는 사람은 다 죽겠다고 해요. 그 법 만든 사람이 서민들은 상관없다고 했던데 나는 서민 아닙니까. 어려운 거 안 겪어 보고 편하게 산 사람이니 그런 말 하지.”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 데시벨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래도 강남역이나 홍대 같은 데는 손님이 많지 않나요?”

“거긴 기분 나빠서 못 가겠어요.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뭘 어떻게 한다고 사진을 찍고 어쩌고, 내 참 기분이 나빠서.”

많아야 육십 살로 보이는 기사의 두툼한 목덜미가 씰룩거렸다.

“아, 기사님이 무슨 범죄를 저지를까 봐서요?”

“대놓고 범죄자 취급을 하니 그런 덴 가고 싶지도 않아요.”

담배 냄새가 찌든 택시 안 대화가 잠시 끊겼다.

“그나저나 새벽에 일하느라 피곤하시겠어요.”

“작년엔 이 시간이면 22만원은 벌었는데 오늘은 17만원밖에 못 벌었어요.”

집 근처에 오자 승객을 내려주고 도심으로 향하는 빈 택시들의 서글픈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입구에 세워 주세요.”

차에서 내려 걷는데 피곤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문득 돌아보니 택시는 가고 없었다.

누군가 신념을 갖고 한 일이 모든 인간의 개별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인간인 나로서는, 그저 내가 악다구니의 하루를 견뎌 내고 무사히 집에 돌아온 것처럼 그 역시 사납금을 다 채우고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carlos@seoul.co.kr
2017-11-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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