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현실을 못 따라가는 예술, 필요한 것은 분발과 성찰/박록삼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현실을 못 따라가는 예술, 필요한 것은 분발과 성찰/박록삼 문화부 차장

박록삼 기자
입력 2015-09-17 18:18
수정 2015-09-1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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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논설위원
영화는 그저 영화일 따름이다. 영화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일쑤다. 영화 ‘베테랑’은 재벌의 맷값 폭행, 땅콩 회항, 재벌 아버지의 아들 보복 폭행 등 몇 년 전부터 신문지상에서 익히 봐왔던 재벌 2세들의 부정적 모습의 표피를 극단적으로 조합해놓은 클리셰에 가까웠다. 영화나 소설 속 과도한 전형성은 사회 모순을 단순화시켜 오히려 서사의 사실성을 훼손하기 십상이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재벌가 자제들이 벌이는 마약파티는 사람들의 공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었다. 재벌 2세라고 어디 그렇게 인간 말종 같은 이들만 있겠나. 지나치게 인위적이어서 오히려 현실감을 떨어뜨렸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갑질’을 응징하는 ‘베테랑’을 보며 통쾌해했고, 대리만족을 느꼈다. 벌써 1260만명이 넘는 관객이 봤고, 개봉 한 달 반을 넘겼음에도 박스오피스 윗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영화는 현실의 변화와 복잡다단함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비롯해 ‘화려한 휴가’ 등은 뒤늦게나마 사회의 변화와 함께 발맞추겠다는 영화의 소박한 고백이었다. 최근에도 자본과 맞서 싸운 이들의 얘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가족’, ‘카트’ 그리고 황우석 박사 사태를 다룬 ‘제보자’나 용산참사를 소재로 삼은 ‘소수의견’ 등이 있었다. 해당 사건이 한참 흐른 뒤였다. ‘지금, 여기’의 치열함은 상대적으로 덜 느껴졌다.

영화뿐이랴. 소설, 연극 등 주요 장르를 포함한 대부분 예술문화 매개체들은 대중의 절박한 외침에서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현재의 과제와 모순을 기민하게 다루기보다는 순수예술의 명분 뒤에서 지켜보고 한참 동안 묵힌 뒤에야 자신들 작품의 소재 혹은 주제로 차용하곤 했다. 그나마 다기 다양한 모순을 시대의 거대한 흐름 속에 녹여내 통찰하고, 인간의 근본적 존재 의미와 맞닿는 사유가 담겨진다면 좋으련만 그조차 의문부호가 달렸다. 원론적 얘기만 되풀이하며 ‘지금, 여기’의 과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벗기 어려운 이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은 그리 쉬 바뀌지 않는다. 잊을 만하면 모순의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이 덕분에 ‘베테랑’은 철저한 상업적 오락영화면서, 본의 아니게, 실시간으로 사회 문제를 구체적으로 비판한 영화로 자리매김되고 말았다.

현실 속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은 혼인으로 인맥을 뒤섞으며 권력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했고, 최근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드라마틱하게 실체의 일단을 드러냈다. 사실 지난달 정부 여당 대표 둘째 딸의 혼사 소식은 훈훈한 미담이었다.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른 결혼식은 ‘겸손한 권력’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사위가 알고보니 충북의 건설재벌 2세였고, 그는 2년 반 동안, 밝혀진 것만 15차례에 걸쳐 엑스터시, 코카인, 대마 등을 상습적으로 투약하다 붙잡혔으며 그럼에도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고, 징역 3년을 구형한 검찰은 항소를 하지 않았고 그의 집에서는 주사기 17개가 발견됐음에도 DNA조사를 어찌했는지 환각의 시간을 함께 즐겼을 ‘제3의 주인’을 찾지 않았다. 세상은 경악했다. 둘째 딸이 지난해 수원대 전임교수 채용의 대가로 총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제외해줬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던 이였다는 사실은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예술이, 대중문화가 현실을 제대로 쫓지 못하고 있다. 부릅뜬 눈으로 분발하고 성찰해야 할 이유다.

youngtan@seoul.co.kr

2015-09-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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