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삼성은 억울하게 먹잇감이 됐나/안미현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삼성은 억울하게 먹잇감이 됐나/안미현 경제부장

안미현 기자
입력 2015-06-16 00:10
수정 2015-06-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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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금융부장
안미현 금융부장
요즘 삼성을 보면 안쓰럽다. 안으로는 메르스, 밖으로는 엘리엇과 고군분투 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잘 모르던 ‘적’들이다. “뭘 해도 얄밉다”며 배 아파하는 소리보다 “어쩌다 삼성이…” 하며 혀를 차를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이러다 삼성마저 흔들리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마음이 더 착잡해지는 것은 이 지점이다. 중요한 본질 하나가 위기상황 속에서 묻혀질까 봐서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주식 3주와 바꾸기로 한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너무 불리하다며 반기를 들었다. 지금보다는 삼성물산 주식 가치를 6배는 더 쳐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4.06%) 가치만 해도 8조원인데 삼성물산 주식 가치가 너무 헐값에 책정됐고, 제일모직 주식은 삼성 오너가인 이재용 3남매가 들고 있다는 이유로 너무 과대 포장됐다는 게 엘리엇의 주장이다.

삼성은 메르스 사태를 오판했듯 엘리엇 초기 대응에도 실패했다. 헤지펀드의 ‘먹튀’ 속성을 부각시켰다. ‘삼성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여론이 퍼졌다. 삼성의 공격과 대한민국의 공격이 동일시됐다. 삼성에 우호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이 무렵 ‘음모론’이 제기됐다. 삼성물산 주가가 동종업계 추이 등에 비춰 볼 때 비정상적으로 낮게 형성돼 왔다며, 관리의 삼성이 합병을 염두에 두고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주가를 ‘찍어 눌러 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논거들도 따라붙었다.

삼성은 그제서야 친절해졌다. 합병 비율은 시장가격(주가)에 근거했고, 산정 수식은 법(자본시장법)을 따랐다며 상세한 수치를 제시했다. 애초 1대0.35라는 합병 비율만 던졌을 뿐 어떻게 이런 비율이 도출됐는지는 설명조차 않던 삼성이었다.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합병의 기대 효과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만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의 자산은 약 30조원이다. 10조원이 채 안 되는 제일모직의 세 배다. 주가를 따졌다고는 하지만 외국에서는 자산도 합병 비율 산출의 중요 잣대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 지분이 0.57%밖에 안 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합병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6.5%)가 되면서 순식간에 삼성전자를 지배하게 된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조원어치를 돈 한 푼 안 쓰고 확보하는 셈이다. 블룸버그가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냉소해도 그닥 억울할 게 없어 보인다.

엘리엇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삼성과 엘리엇이 싸우면 그래도 삼성 편을 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달 생각도 없다. 하지만 주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실패하고도 여전히 주주 권익보다 오너 편익을 중시하는 한,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에서 모종의 후계 승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불신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재벌자본주의는 지지받기 어렵다. 경쟁자가 써 낸 입찰가의 두 배가 넘는 10조원을 써내고도 왜 그렇게 엄청난 돈을 주고 그 땅을 사야 했는지 이렇다 할 설명조차 없는, 그래 놓고는 오너의 통 큰 결단이자 미래를 내다본 예지라고 박수치는 한 제2의 엘리엇은 언제든 우리 기업을 공격해 올 것이다.

먹튀는 지탄하면서 먹튀 빌미를 제공한 데 대한 자성은 왜 하지 않는가. 허투루 공격당하지 않도록 빗장을 새로 치고 손보겠다는 방책은 왜 내놓지 않는가.

hyun@seoul.co.kr
2015-06-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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