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운 정치부 차장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초기만 해도 대부분 어이가 없다는 반응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줄 안다.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어떠한지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정신은 중국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10년인데, 역사는 계속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이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으리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망언에 망언이 그치지 않고, 그것이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인륜’에 관한 일이 이럴진대 독도 문제에 일본의 염치를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 모른다. 독도를 교과서에 우겨넣은 일본은 그저 기다리는 중이다. 한 세대만 지나면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지식이 좀 더 풍부해지면서 상황은 호전될 거라 믿고 있을 게다. ‘고구려’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던 절대 다수 중국인들에게 고구려가 익숙해진 요즘이다. 그때쯤이면 한·일 젊은이들은 독도의 역사성을 놓고 뜨겁게 싸워야 할지 모른다.
역사가 문제가 되기는 안팎이 따로 없다. 요즘 국내서 벌어지는 역사교과서 논쟁은 좀 극단적으로 하자면 ‘유관순이냐, 전태일이냐’로도 압축된다. 한쪽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 희생자이자 항일의 아이콘 ‘유관순 누나’가 어떻게 교과서에서 사라질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EBS 한국사 교재에서 여운형-조봉암-전태일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며 교육부가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고 흥분하고 있다.
논쟁은 특정인물의 첨삭으로 그치지 않는다. 유관순과 전태일을 각각 어떤 분량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는 숨은 논쟁거리다. 역사적 비중, 과연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갖고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곳곳에 지뢰다. 역사 교육의 다양성, 선택권의 문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로의 복귀와 맞물려 있다. ‘고구려는 옛것이니 현대사 비중을 늘려달라’고 한다면 다양성에 대한 이 욕구는 얼마나 충족될 수 있을까. 나아가 학교와 사회는 이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는 있는가.
있는 역사를 간수하기도 바쁘지만 우리에게는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역사’도 적지 않다. 예컨대 해방~6·25 전후 건국기의 사건들은 남북 간 쟁탈의 영역으로 남은 지 오래다. 국체와 그에 따른 정체성을 좌우지하는 주요한 지점이지만 선뜻 그곳으로 나아가려들 하지 않는다.
역사가 안팎으로 주는 괴로움은, 애시당초 기다려 그쳐질 일이 아니었다. 역사 문제는 상시 갈등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로 또 10년이 지나면 고구려나 위안부, 건국기의 사건들은 더욱 뜨거운 ‘분쟁’으로 달아오를 것이다. 중국, 일본, 북한이 ‘바보야, 문제는 역사교육이었어’라고 할 때, 땅을 쳐도 늦다.
jj@seoul.co.kr
2014-09-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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