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3세 경영과 월급쟁이 신화/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3세 경영과 월급쟁이 신화/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입력 2012-07-03 00:00
수정 2012-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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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해 사이에 10대 그룹의 순환출자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창업주 3세의 경영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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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두산은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뛰어오르는 데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한 기업집단(그룹)이다. 다만 이 기업들은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로 이른바 ‘총수’(최대주주)의 보유지분은 평균적으로 줄었지만 일가의 지분이 더 늘어난 탓에 눈총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11번째 기업집단’에 눈길이 간다. 자산 총액이 24조 3000억원으로 10위 두산(29조 9000억원)의 뒤를 잇는 STX그룹이다.

STX는 최근 10대 그룹과 달리 세계 경기불황 속에서도 공세적인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또 STX의 창업주인 강덕수 회장이 여느 총수들의 배경과 다르게 ‘월급쟁이 신화’를 일군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유럽의 총체적 경제난은 중국의 성장 부진과 미국의 경제력 상실로 이어졌다.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로서는 뛰어다닐 시장이 활력을 잃은 셈이다.

이럴 때에는 우선 제 몸부터 추스르는 수세적 경영전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글로벌 마케팅보다 내핍(耐乏)경영, 생산·품질관리 등이 강조된다. 대기업 경영인들이 생산 현장을 다독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STX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의 창싱다오(長興島)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조선소를 짓고, 세계 최대급 생산설비를 갖춘 뒤 미래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 해양조선 경기가 여전히 불황인데,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과감한 행보를 내디딘 것이다.

이는 ‘10대 그룹’과 ‘11번째 그룹’ 중 누구의 길이 옳다 그르다를 따질 문제가 아니고 분명히 다른 선택인 만큼, 결과를 지켜볼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강 회장은 30년 직장생활을 하다가 자신이 다니던 쌍용중공업이 2000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무너지자, 종업원 신분으로 그 회사를 인수해 오늘의 STX로 키웠다.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10여년 만에 몸집을 부풀리다 보니 종종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그의 신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앞서 월급쟁이 출신의 총수였던 1960년대 율산그룹 신선호 회장과 1980~90년대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신화의 주인공에서 부정의 장본인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STX가 기업의 도전 정신만은 이어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 대다수 기업집단의 역사는 창업주의 놀라운 신화가 경영권의 세습으로 이어진 탓에 영욕의 ‘재벌’(財閥)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많은 2세 경영인은 기업 지배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고 혼란을 겪어야 했다. 과거에 일부 준비 안 된 2세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제 3세 경영인은 창업 신화의 효험을 누릴 수 없다. 제 스스로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STX 강 회장 역시 자신이 일군 부를 자녀들에게 나눠줄 수는 있어도,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태종인 방원 등 2세들의 비극을 보면서 ‘용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영명한 3세 세종을 맞으면서 조선은 500년 왕조의 역사를 이어간다. 반면 로마제국을 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경우 2세 티베리우스 때에는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3세 칼리굴라가 폭군으로 남으면서, 영광스러운 왕조를 5대 만에 잃고 만다.

이슬람 제국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제국의 후계를 일종의 전문경영인(CEO)에게 넘겼지만, 여기서 세습이 발생했고 결국 무함마드 3세가 반기를 들면서 오늘날 수니파와 시아파의 비극적 앙숙이 시작됐다.

고금에서 3세 경영이 중요했다.

kkwoon@seoul.co.kr

2012-07-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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