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겨울 서울 창성동의 한 음식점.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나타났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좀 바빠서….” 외투를 벗고 자리에 앉은 이인규는 3, 4년 전 과천청사에서 봤던 이인규와는 달랐다. 장·차관, 실·국장 브리핑 때 수첩을 옆구리에 끼고 브리핑룸에 앉아 있던 노동부 ‘근로기준과장 이인규’는 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주위의 시선을 끌 정도로 과묵했다. 따로 뭘 물어도 길게 답변하거나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낯빛이 어두웠지만 풍기는 인상만큼은 무척 강했다. 끓어오르는 게 있지만 입을 열지 않겠다는 오기가 배어 있는 듯했다.
호남 인맥이 탄탄했던 시절, 노동부의 이인규는 찬밥 신세였다. 차관부터 실·국장 실세들은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다. 예비 국장감도 마찬가지였다. 보스 기질이 남다른 영남 출신인 이인규는 이런 현실에서 말 못할 답답함을 느꼈을 터다.
그런 이인규에게 ‘MB 정권’은 자신의 ‘장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마당이었다. 총리실로 출입처를 옮긴 지 40일 만인 2008년 12월18일 그를 만났다. 이가 안 좋아 소주는 못 한다고 했지만 얼굴은 활기차 보였다. 표정도 밝았고, 특유의 내리까는 듯한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말수는 적은 편이었다. 화제는 관가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년 겨울 관가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1급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고위 공무원 ‘졸초상’은 관가뿐만 아니라 세인의 관심사였다. 이인규는 1급도 1급이지만 아랫도리가 더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 2급들이 아무리 시켜도 실무자들이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버티면 용빼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인규 입장에서는 억울한 심정일 수 있다. 정권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었는데 돌아온 것은 영어의 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이란 악수는 본인에게도 뼈아픈 일이지만 정권 쪽에서도 부담이다.
사실 민간인 사찰은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누가 은밀하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소름 끼칠 일이다. 20년 전에도 민간인 사찰 폭로가 있었다. 보안사를 탈영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교수, 재야인사 등 1300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사찰 대상 명단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한승헌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전국적인 규탄대회가 이어졌고, 노태우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상훈 국방장관은 전격 해임됐다. 20년 만에 반복된 일로 흥분한 야당은 벌써부터 이인규 선에서 끝난 민간인 사찰 수사와 관련해 특검을 조준하고 있다.
특검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11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렇게 하려면 더는 ‘원칙·정도 수사’ 운운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총리실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검찰의 태도는 단호해 보였다. ‘나오는 대로 가겠다.’, ‘정치일정 고려하지 않는다.’고 서슬 퍼렇게 나왔다. 국민들의 의혹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가 과연 그랬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미덥지 않았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너무 앞서 간다거나 팩트가 중요하다고 김을 뺄 때부터 알아봤다. 검찰 수뇌부는 팩트를 가져오라고만 했지 팩트를 찾도록 하는 데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팩트를 찾는 일을 했는지, 피했는지를 묻고 싶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여론은 냉소적이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한다 해도 무엇을 얼마나 밝혀낼지 의문만 쌓이게 만든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신사답게 수사하겠다고 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응당 불편한 일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이 임기 채우겠다는 생각으로는 안 되는 이유다.
ykchoi@seoul.co.kr
최용규 사회2부장
호남 인맥이 탄탄했던 시절, 노동부의 이인규는 찬밥 신세였다. 차관부터 실·국장 실세들은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다. 예비 국장감도 마찬가지였다. 보스 기질이 남다른 영남 출신인 이인규는 이런 현실에서 말 못할 답답함을 느꼈을 터다.
그런 이인규에게 ‘MB 정권’은 자신의 ‘장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마당이었다. 총리실로 출입처를 옮긴 지 40일 만인 2008년 12월18일 그를 만났다. 이가 안 좋아 소주는 못 한다고 했지만 얼굴은 활기차 보였다. 표정도 밝았고, 특유의 내리까는 듯한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말수는 적은 편이었다. 화제는 관가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년 겨울 관가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1급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고위 공무원 ‘졸초상’은 관가뿐만 아니라 세인의 관심사였다. 이인규는 1급도 1급이지만 아랫도리가 더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1, 2급들이 아무리 시켜도 실무자들이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버티면 용빼는 재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이인규 입장에서는 억울한 심정일 수 있다. 정권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었는데 돌아온 것은 영어의 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이란 악수는 본인에게도 뼈아픈 일이지만 정권 쪽에서도 부담이다.
사실 민간인 사찰은 세상이 뒤집힐 일이다. 누가 은밀하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라. 소름 끼칠 일이다. 20년 전에도 민간인 사찰 폭로가 있었다. 보안사를 탈영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교수, 재야인사 등 1300명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사찰 대상 명단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한승헌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전국적인 규탄대회가 이어졌고, 노태우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상훈 국방장관은 전격 해임됐다. 20년 만에 반복된 일로 흥분한 야당은 벌써부터 이인규 선에서 끝난 민간인 사찰 수사와 관련해 특검을 조준하고 있다.
특검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11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렇게 하려면 더는 ‘원칙·정도 수사’ 운운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총리실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검찰의 태도는 단호해 보였다. ‘나오는 대로 가겠다.’, ‘정치일정 고려하지 않는다.’고 서슬 퍼렇게 나왔다. 국민들의 의혹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가 과연 그랬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 볼 일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미덥지 않았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너무 앞서 간다거나 팩트가 중요하다고 김을 뺄 때부터 알아봤다. 검찰 수뇌부는 팩트를 가져오라고만 했지 팩트를 찾도록 하는 데 무슨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팩트를 찾는 일을 했는지, 피했는지를 묻고 싶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여론은 냉소적이다. 검찰이 추가 수사를 한다 해도 무엇을 얼마나 밝혀낼지 의문만 쌓이게 만든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신사답게 수사하겠다고 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응당 불편한 일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이 임기 채우겠다는 생각으로는 안 되는 이유다.
ykchoi@seoul.co.kr
2010-08-13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