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호 칼럼] 더 평등한 돼지들의 향연/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더 평등한 돼지들의 향연/논설실장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23-05-17 01:45
수정 2023-05-1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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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돈봉투’에 ‘김남국 코인’
이들에게 국민은 ‘가붕개’일 뿐
민주당사에 ‘동물농장’ 들어서
내로남불의 벽, 창조적 파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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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실장
진경호 논설실장
김남국은 짐짓 억울해 보인다. ‘코인 좀 했기로서니 세상이 이렇게 난리를 떨 일인가!’ 뒤로 60억, 90억 코인을 굴리고 앞에선 라면만 먹느니 하며 ‘한 푼 줍쇼’ 궁상 코스프레를 펼친 건 그저 정치놀이일 뿐인데 위선이라니, 세상이 미친 거다. 의정 활동이야 금배지로서 보여야 할 ‘쇼’이고, 코인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할 ‘현찰’ 아닌가. 국회 상임위에서든 어디에서든 어찌 휴대전화에 머리 박고 코인질을 하지 않을쏜가. 그렇다고 할 일을 안 했나. 더불어민주당의 간판 ‘조국 키즈’이자 ‘이재명 수호전사’로서 ‘검수완박’이든 장관 탄핵이든 방탄 국회든 맨 앞에서 밀어붙였다. 뭘 잘못했나. 코인, 나만 했나!

그러나 그의 억울한 얼굴 뒤로 펼쳐지는 정황들은 다른 얘기를 한다. 코인 출처와 용처, 인출 여부 등을 놓고 지난 일주일 그는 횡설수설로 일관했다. 대선을 앞두고 거액의 코인을 인출한 정황도 드러났다. 당이 조사할 기미를 보이자 탈당 카드로 뭉갰다. 김남국 윤리감찰을 지시했던 이재명 대표는 정작 의원총회 결의문에 국회윤리특위 제소를 담는 건 막았다. 죄다 앞뒤가 안 맞는다.

김남국 코인의 실체는 검찰 수사로 가려질 일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 5년, 가상화폐 광풍 속에 별별 잡코인 업자들로 북적였던 국회 풍경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당시 포럼이다 뭐다 하는 코인업자들의 판촉 행사엔 어김없이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 중엔 국회의장과 여당(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지어 청와대 수석도 있다. 지난 3월 강남 여성 납치살해 사건을 낳은 퓨리에버 코인이 2020년 11월 국회에서 연 판촉 포럼에도 여야 의원 4명이 공동주최자로 참가했다. 거물급까지 국회의원들을 손쉽게 불러내는 이들 코인업자의 힘은 어디서 나왔겠나. ‘김남국 코인 사태’는 머지않아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모른다.

우리 정치의 너절함이 바닥을 보이는 듯하다. 실체가 무엇이든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절대 가치로 삼은 이들에게 국민은 눈속임의 대상일 뿐이다. ‘송영길 돈봉투’를 뿌리고 받은 자들이 얼추 40명이 넘는다는데 대다수는 지금도 국민 앞에서 검찰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대장동 의혹 등으로 법정을 드나들기 바쁜 이재명 대표는 이런 이들을 제쳐 두고 “김현아는요?”, “박순자는요?”, “태영호는요?” 하며 딴청을 피운다. 국민을 ‘가붕개’로 보는 게 아니고선 이렇게 이죽댈 수 없다. 김남국 사태 앞에서 그가 머리를 숙였다지만, 청년들의 울분에 당 지지율이 흔들리지만 않았어도 가재, 붕어, 개구리에게 사과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민주당사에 들어섰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돼지들의 7계명이 ‘다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대원칙으로 귀결된 동물농장의 막장 드라마가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재판에 넘겨져도 당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당헌 개정, 대법원 확정판결 전까지는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자라도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울 수 있도록 한 공천 규칙 개정,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하고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하는 후안무치, 소속 의원을 탈당시켰다가 복당시키는 꼼수까지 불사한 입법 농단은 ‘보다 평등한 돼지’로서의 굳건한 오만과, 신앙의 세계에 들어선 ‘개딸’과 함께 이뤄 낸 지난 수년의 그릇된 성취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일 나치 세력으로부터 ‘평범한 얼굴의 악(惡)’을 찾아내 고발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거짓과 위선의 종말을 이렇게 말했다. “일관된 거짓말로 진실을 완벽하게 대체한 결과는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게 아니다. 세상의 방향 감각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위선의 전범이 된 조국 사태와 이재명 방탄을 거치면서 민주당은 길을 잃었다. 내로남불의 벽에 갇혔다. 질곡의 한국 정치사는 이럴 때 창조적 파괴를 말했다.
2023-05-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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