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관리’ 이대론 안된다…가족해체·살인·인권침해까지

‘치매 관리’ 이대론 안된다…가족해체·살인·인권침해까지

입력 2017-06-07 09:36
수정 2017-06-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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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관리책임 가족 몫인 탓에 저소득층 비극적 선택 늘어

2017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다. 85세 이상은 그 비율이 40%에 달한다. 이제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은 더는 남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치매 환자 돌봄 문제로 가족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민간요양원에 모신 치매 부모가 학대를 당해 ‘두 번의 상처’를 입는 일도 드물지 않다.

비교적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공립요양원의 경우 수도권에서 입소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 치매 환자 가족의 잇따른 ‘비극’

지난달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6년간 치매를 앓아온 노모를 모시고 살아온 아들이 연탄불을 피워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 모자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으며, 노모는 최근 들어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각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은 자신의 조카에게 “메시지를 볼 때쯤 할머니와 삼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장례를 잘 치러달라”는 예약 문자메시지를 보내놓고 세상을 등졌다.

어버이날이던 같은 달 8일에는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노인의 시신이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83세의 이 노인은 평소 치매 증세를 보였는데, 가족이 어버이날을 맞아 방문했을 때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이처럼 저소득층 가정에서 치매 환자가 발생하거나 독거노인이 치매를 앓다가 비극을 맞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평생을 해로한 부부라고 하더라도 치매 발병 이후 불거진 갈등 때문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 7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치매 증상을 보이던 70대 남성이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고 투신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2013년 경북 청송에서는 치매 아내를 4년간 간병해온 80대 남성이 아내를 승용차에 태운 뒤 저수지로 뛰어들어 함께 숨지기도 했다. 아내가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자신이 세상을 먼저 떠났을 때 아내가 혼자 남겨지는 상황을 염려하던 끝에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치매센터의 최경자 치매상담콜센터 팀장은 “치매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효부상까지 받은 며느리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시아버지에게도 치매가 찾아오자 더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한 사례가 있었다”면서 “치매 환자가 생기면 나중에는 본인보다 가족이 더 힘들어지므로 여러 가족이 돌봄을 분담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보건복지부 산하인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에는 하루 평균 350건, 월평균 9천 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온다.

◇ ‘내 부모처럼 모셔준다더니’…요양원에서 인권 침해

치매 환자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혹은 ‘보다 나은 돌봄을 위해’ 환자를 요양원에 모신다. 그러나 요양보호사에 의해 폭행이나 결박 등 학대를 당해 ‘또 다른 상처’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5년 10월 27일 전북 남원시의 한 요양원에서는 치매 환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50대 요양보호사가 입건됐다. 이 요양보호사는 경찰에서 “치매 상태가 심각한 환자가 예배를 방해하고 자꾸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제지하려다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2014년 3월 강원도 춘천의 한 요양원에서는 치매 노인 2명을 테이프로 휠체어에 감아놓거나 조끼를 휠체어 등판에 끼운 채 못 움직이게 결박한 요양원 원장과 요양보호사가 적발되기도 했다. 공동세면장 출입문을 열어두고 노인들을 목욕시켜 수치심을 유발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요양원 내에서 치매 환자 간 살인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다.

2014년 4월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는 치매 환자 C(71·여)씨가 같은 입원실에서 지내던 D(70·여)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군포시에서 민간요양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폭탄’을 떠안고 있는 것이어서 항상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데, 업무 강도가 세고 처우가 좋지 않다 보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도 요양원 취업은 20∼30%만 하는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이 원장은 “전문교육기관을 도입해 인성과 도덕적 소양을 갖춘 요양보호사를 배출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수도권 공립요양원 입소 ‘하늘의 별 따기’

조금이나마 질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찾는 공립요양원은 입소 경쟁률이 매우 높다.

경기도에는 모두 1천500여 곳의 노인전문요양원이 운영 중인데, 이 중 11개 기관만이 지자체에서 위탁 운영 중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우선 입소 대상자이지만, 일반인 가족 환자들의 대기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기 기간은 기본 1∼2년이다.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병원 관계자는 “지금 입소를 희망하는 대기자가 100명이나 된다”면서 “수년 전 대기를 걸어놨다가 미처 입소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고 전했다.

민간요양원을 믿지 못하다 보니 아예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으나 부작용이 따른다.

요양병원은 지속적인 주사제 투입이 필요한 심장·신장 환자 등을 위한 곳이고, 거동에 불편이 없는 치매 환자는 재활 서비스에 특화된 요양원에서 지내도 되는데도 굳이 병원을 찾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

김준석 부산시립노인건강센터 사무국장은 “재활 서비스가 있는 요양시설에서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치매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가 6개월간 누워서 지내다 보면 오히려 나중에는 걷지도 못하게 된다”면서 “제도적으로 장기요양등급 진입장벽을 낮추고 요양시설을 보호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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