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대] “걱정없고, 평범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어 주세요”

[문재인 대통령 시대] “걱정없고, 평범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만들어 주세요”

박재홍 기자
박재홍 기자
입력 2017-05-10 18:18
수정 2017-05-10 23:4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새 대통령 문재인에게 [ ]를 바란다

“대통령 문재인에게 내가 바라는 건 ‘퇴근 이후에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이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빼면 거의 야근인데 그나마 일찍 끝나도 잔업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 됐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정보기술(IT)업체 직원 김태희(19)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10일 서울 종로, 구로디지털단지, 강남 코엑스, 광화문광장 등에 스케치북을 들고 나갔다. 거리의 시민들에게 ‘당신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을 써 달라고 했다. 국민의 바람은 거창하지 않았다.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 스마트폰을 이용한 재택 야근을 법적으로 막아 달라, 스스로 벌어 월세는 낼 수 있게 해 달라, 노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미지 확대
다만 지난 정부에 대한 평가나 새 정부에 대한 전망은 연령별로 극명하게 갈렸다. 청년층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제대로 가리고 청산해야 개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고령층은 신임 대통령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냈다. 이런 극명한 갈등을 문 대통령이 통합과 소통의 길로 이끌어 주길 바라는 이도 많았다. 시민들은 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말한 것처럼 맡은 일을 하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연령별로 엇갈린 새 정부에 대한 기대

강남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유묘숙(55)씨는 “모든 후보가 매번 선거 때마다 서민들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켜진 건 없었다”며 “문 대통령에게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이 맘 편히 장사할 수 있는 사회만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의류업체에서 근무하는 오초록(27)씨는 “국가공무원법과 근로기준법에 있는 보건휴가를 눈치 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대 청년층과 60·70대 고령층은 대부분 일자리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하혜빈(25)씨는 “새 대통령이 청년 스스로 벌어서 적어도 월세는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며 “우리 청년들이 기본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유창호(81)씨는 “노인 일자리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과 같은 단순노동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건 일시적 해결책밖에 안 된다.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늘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다. 김병집(80)씨는 “이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일”이라며 “통일이 되면 일자리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통 부재… 사회통합 쉽지 않을 것”

시민들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면서도 문 대통령이 내세운 사회통합과 개혁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IT업체에서 웹개발자로 일하는 심병호(31)씨는 “이번 대선 결과를 보니 젊은층은 진보 후보, 고령층은 보수 후보를 지지해 세대 간 선택이 갈라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며 “이 같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늘 실패했던, 검찰개혁과 정경유착 근절을 내세웠는데 실제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동욱(38)씨는 “경제 활성화와 외교·안보가 가장 시급한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갈라진 국민을 통합하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며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적폐로 규정하고 부정하기보다는 규제 혁신과 같은 일부 긍정적 측면은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면 갈라진 사회통합에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와 차기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세대별로 완전히 나뉘어 연령별 투표 결과로 나타난 세대 간 인식 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김록주(26)씨는 “지난 정부가 잘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큰 것은 소통의 부재였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정부도 소통을 내세웠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혜빈씨는 “지난 정부는 국민이 권력을 주지 않은 제3의 인물이 국정을 좌우하고, 국민의 미래를 위한 세금을 개인이 취해 국민의 분노를 자아낸 것”이라며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정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보수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등 미·중 관계 개선 잘할지 의문”

반면 탑골공원에서 만난 박은중(80)씨는 “박근혜 정부가 딱히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이번 정부가 북한에 돈을 너무 퍼줄 것 같아 그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창호씨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부터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 등에 있어 문 대통령 정부에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이 잘할 수 있는 게 많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보수단체들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보하고 의견 굽히는 타협 정신 필요

사회 원로들은 사회통합을 위해 기존 구태 정치를 타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던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는 “과거 정부처럼 대통령이 자신의 의중과 다르다고 해서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인 만큼 야당에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내주고 자신의 의견도 굽힐 줄 아는 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다”며 “구태 정치의 악습 중 하나인 ‘자기 사람 심기’도 뿌리 뽑아야 한다. 공직을 감투라고 생각하지 말고, 영화감독이 흥행을 위해 배역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듯 대통령과의 관계를 배제하고 국민을 위해 일을 잘할 인재를 발탁하는 탕평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7-05-11 1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