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북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지난 2월 26일 주베트남 북한 대사로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하노이 북한 대사관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수행하는 모습. 서울신문DB
김 대사는 20일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에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지 그 내용을 나로서는 다 알 수 없지만 조미(북미) 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취지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을 때 그것은 우리를 매우 심하게 지연시켰다”며 “그래서 나는 존 (볼턴)이 과거에 얼마나 서툴게 했는지 정말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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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 측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교환하는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제안한 반면, 미국 측은 북한의 모든 핵시설 신고·폐기에 합의하는 일괄타결식 해법을 요구해 회담이 결렬된 바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일괄타결을 주장했던 볼턴이 제거됐기에 미국이 단계적 접근을 수용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모호하게 언급했던 ‘유연한 접근’에 대해 북한이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선수를 쳤다”고 했다.
실제 미국이 향후 북미 실무 협상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접근’을 취할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2차 하노이 회담 당시 미국 측이 요구했던 일괄타결은 거둬들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비핵화 협상 기한을 연말로 못박았고 미국 역시 내년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에 양측 모두 시간적 제약이 있다”며 “일단 합의 가능한 수준에서 일단락을 짓은 뒤 일차적 합의를 실천하고 나서 다음 단계의 합의를 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양측 모두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양측이 어렵사리 비핵화 해법으로 단계적 접근에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첫 번째 단계의 합의에 어느 조치를 포함하고 서로 교환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이미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한 만큼, 미국은 영변 핵시설 이외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 내지 신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의 상응조치로서 요구한 대북 제재 일부 해제 외에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홍민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도 워싱턴 정가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 외의 플러스 알파를 얻어내야 하므로 핵 프로그램 동결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북한 역시 강경파 군부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받아내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은 북한에 처음부터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핵 프로그램을 언제 신고할 건지는 약속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은 임기가 1년여밖에 남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선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하지 않으려 하겠기에 신고 시점과 조건에 대해 양측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미국이 여전히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목표라고 천명하고 있는 만큼, 일괄타결식 접근은 폐기하더라도 1단계 합의에서 비핵화의 최종상태(엔드 스테이트)와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협상이 교착을 거듭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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