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사관’ 국회 속기사
(“야,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하는 의원 있음)(“그만해, 그만해!” 하는 의원 있음)
(“야, 이 도둑놈들아!” 하는 의원 있음)
(“당신은 매국노다!” 하는 의원 있음)
(“에이, 나쁜 놈들아!” 하는 의원 있음)
(“날치기! 무효!” 하는 의원 있음)
(“이것이 민주주의냐!” 하는 의원 있음)
국회 의정기록과 신재선 속기사가 기계속기를 하고 있다. 1분에 320자(2벌식 타자로는 1분에 1000타에 해당)의 속기 속도를 표현하기 위해 다중노출로 촬영.
국회에서 열리는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등의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의 발언은 국회 속기사들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된다.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만든 회의록은 국회 회의록시스템(likms.assembly.go.kr/record)을 통해 국민들에게도 공개된다. 속기사들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회의의 순간은 그들의 손을 통해 영원히 저장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국회에는 70여명의 실무속기사 그리고 편집, 기록심의관 등을 포함해 127명의 속기사가 있다. 모든 속기사들은 기본 1분에 320자(2벌식 타자로는 1000타에 해당)를 기록하는 속기 실력을 갖추고 있다. 현재 실무속기사는 대부분 기계속기를 하고 있지만 1997년 이전 임용된 고참 속기사들은 수필속기로 기록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에는 전담 속기사가 배치된다.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전담속기사들의 경우는 자신이 담당하는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목소리까지 구분한다. 속기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속기사들은 본회의는 5분, 상임위는 15분마다 교대하며 회의를 기록한다.
실무속기사가 작성한 회의록은 담당 계장이 검토한 후 편집주무관의 교열 과정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된다. 최종적으로 작성된 회의록은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국회도서관 기록보존소에 영구보존된다. 온라인에도 공개가 되기 때문에 기록작업 이상으로 검수작업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5분 동안 기록한 회의록에 대한 번문(飜文)에 최소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신재선 속기사가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속기사 전용통로에서 교대를 기다리고 있다.
수필속기로 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국회 의정기록과 이규진 속기사가 수필속기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다. 속기 내용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다.
국회의 한 속기사가 담당 상임위원회에서 작성한 회의록을 사전과 참석자 명단을 놓고 수정하고 있다.
속기사들이 손가락과 손목에 스포츠테이핑을 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기록보존소에서 기록연구사가 제16대 국회 본회의 회의록을 정리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기록보존소에는 제헌국회부터 속기사들이 기록한 3567권의 회의록이 보관돼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현대판 ‘사관’이라 불리는 속기사들은 손목과 목 관련 질환 그리고 청력과 시력 관련 질환 등 다양한 육체적 직업병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맞춤법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바로잡으려는 습관은 속기사를 괴롭히는 심리적 직업병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직업병보다 속기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의원들의 발언 스타일이다. 의원들 특유의 말투나 비속어, 사투리까지 그대로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기록의 오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다. 회의 후 영상자료를 보며 다시 확인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도 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는 해당 의원에게 직접 문의하기도 한다.
속기사들 사이에는 ‘속기사에게 인기 없는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순화 국회 의정기록과 서기관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의원은 발언 내용에 대해 충분히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바로 그만큼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방증이기에 이런 말이 생기게 된 것 같다”며 의원들의 바른말 사용을 부탁했다.
글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2016-08-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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