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인사이드] “일자리 없나요…직업군인 전역자입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일자리 없나요…직업군인 전역자입니다”

정현용 기자
정현용 기자
입력 2015-10-20 16:19
수정 2023-04-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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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취업박람회가 열리면 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전역자나 전역예정자가 많지만 10명 중 4명은 취업 기회조차 잡지 못합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군인 취업박람회가 열리면 늘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전역자나 전역예정자가 많지만 10명 중 4명은 취업 기회조차 잡지 못합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저는 32년을 군 복무한 예비역 원사입니다. 전역 후 지역 제대군인지원센터를 방문해 취업문을 노크했지만, 특별한 자격증이 없어 아파트 경비원이나 건설 공사장 안전통제 일일업무 같은 직종을 알선해줬습니다. 그것도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공부해서 사회복지사 2급, 전기 기능사, 승강기 기능사, 1종 대형면허 버스운전자격증을 취득해 센터에 문의했지만 조금 기다리라고만 했지 특별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구직 중에 있습니다”(전역자 A씨)

”저는 상비사단의 한 부대에서만 군 생활의 시작과 마무리를 했는데 주요 참모 직위를 맡으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주말 출근도 했고 자기계발을 할 여력이 없었지요. 장기선발에서 떨어지고 사회에 나와서 일반 지원자들과 취업준비로 시간을 보내고…군생활 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이 전역 군인을 영업직군으로만 뽑습니다. 저도 최종 면접에서 영업직 권유를 받아서 성향상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탈락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전역 후 생계 유지를 위해 말 그대로 몸으로 때우는 업종에 종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주요 직군에 발을 들이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일반 지원자들의 자격 및 기타 어학수준이 경쟁을 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기 때문이죠. 아는 지인도 전역 군인 선배인데 기업에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압박을 받아 퇴사하고 택시기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내 미래 모습이 아닌가 두려움이 듭니다”(전역자 B씨)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명예로운 보훈’을 국정 과제로 채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2017년까지 제대군인을 위한 일자리 5만개를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범부처 협의체인 ‘제대군인지원협의회’를 운영하고 올해 초까지 일자리 3만 118개를 마련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마침 20~26일은 제대군인주간입니다. 첫날인 20일 정부는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제대군인 취·창업 한마당 행사를 열었습니다.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 행사도 갖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서울신문DB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서울신문DB
그런데 정부의 열띤 홍보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달라”는 제대군인들의 아우성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위의 글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올라온 중·장기복무 제대군인들의 사연 중 일부입니다.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겨 참담한 상황에 있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안타까운 호소가 적지 않습니다. 제대군인주간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부사관 이상 중·장기복무자들의 노고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저는 요란한 행사 대신 그들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춰봤습니다.

●재취업률 58.7%…비정규직이 62.6%

보훈처 조사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58.7%. 5544명만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는 3614명이 취업했습니다. 보훈처는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한 2013년 초와 비교하면 지난해말 기준 취업률은 6.1% 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여전히 취업 전선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 제대군인 306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17명(62.6%)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됐다는 부분에서 구직자들의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국내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비율(32.4%)의 두 배입니다. 조사 대상자 평균 연소득은 2525만원으로, 2000만원이 안 되는 제대군인이 810명(26.5%)에 달했습니다. 연 소득 4000만원 이상은 224명(7.3%)에 그쳤죠.

업종은 사무·경영이 836명(27.3%)으로 가장 많았고 보안·법률(23.4%), 시설관리(13.1%), 제조업(13.1%)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취업자 상당수가 계약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업 안정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직원 수 100명 이상인 국내 기업 1만 4000여곳 가운데 제대군인을 채용한 회사는 1700여곳으로, 약 12%밖에 안된다고 보훈처는 지적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걸까요.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정년이 있어 의사와 무관하게 군복을 벗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령은 10대 1, 대령은 20대 1의 진급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육군 제공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정년이 있어 의사와 무관하게 군복을 벗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령은 10대 1, 대령은 20대 1의 진급 경쟁을 뚫어야 합니다. 육군 제공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는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별 정년제도가 있습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급하지 못하면 대위는 43세, 소령은 45세, 중령은 53세, 대령은 56세에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상사는 53세, 원사와 준위는 55세입니다. 대부분이 중도에 군복을 벗길 바라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중령 진급 경쟁률만 10대 1, 대령 진급은 20대 1에 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로 나와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복무기간 20년을 채우지 못한 대위와 소령, 중사, 상사 등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평균 연령은 45세이고, 부사관 출신 제대군인의 80% 가량이 고졸 출신이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일반인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기업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제대군인은 정부지원 없이는 사실상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정부 지원은 제대군인은 물론 인력 수요자인 기업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훈처는 기업에 ‘보훈특별채용’이라는 명목으로 제대군인 채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2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제조업 200인 이상) 직원의 3~8%를 국가유공자, 유공자 자녀와 제대군인으로 의무채용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비율을 채우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지만 이 제도를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제대군인 취업, 기업 입장에서 보라

일부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오히려 보훈처를 ‘갑’이라고 칭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채용에 필요한 인력은 IT 전문인력인데 반강제적으로 전문성도 없는 제대군인을 추천해왔다”거나 “온라인 시스템이 없는지 오프라인 이력서를 잔뜩 꺼내주며 선택해보라고 했다”, “보훈처 담당자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고용해 지원 직종과 관련없는 자리를 줬다”고 토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반면 보훈처 직원들은 “밤낮으로 제대군인을 채용해달라고 기업에 읍소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합니다. 재취업과 관련해 아무런 유인책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양쪽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하지만 군인에게는 전역 전까지 1년의 취업준비기간이 있을 뿐입니다.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과 직업군인에 대한 교육기간 확대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기업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원하지만 군인에게는 전역 전까지 1년의 취업준비기간이 있을 뿐입니다. 기업에 대한 세제지원과 직업군인에 대한 교육기간 확대가 필요합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법은 존재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훈가족이라는 것 하나로 기업에 의무고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면서 제도는 더욱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방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대군인과 기업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실질적인 채용 비용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오히려 올해 3월 육군 내부에서는 의무고용 과태료를 현행 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기업과의 의식 간극을 좁히기는 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은 제대 전 최대 1년의 직업교육지원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제대군인지원센터, 지자체 일자리센터 등을 통해 전역 후 일자리 소개나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역해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기 전 미리 충분히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격오지에서 근무를 하는 군인일 수록 혜택 받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지휘관 뿐만 아니라 전역 예정자조차도 취업교육 지원제도를 잘 모르는 사례가 여전히 많습니다. 지난해 전역 예정자와 지휘관, 인사실무자 등 6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역 예정자의 33%, 지휘관의 30%가 전직지원제도를 잘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전역 예정인 중기복무자 10명 가운데 6명은 교육비 지원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취업교육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 세상에 나오면 다시 취업 사교육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2008년 보훈처가 ‘전직지원금 제도’를 마련해 5년 이상 19년 6개월 미만 복무한 군인연금 수급권이 없는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증명하면 5년 이상 중기복무 제대군인은 월 25만원,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은 50만원씩 최장 6개월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기복무 제대군인에 대한 전직지원금 제도는 지난해가 돼서야 뒤늦게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이것마저 끊기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전역자는 당장 수입이 끊기는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육군 부사관의 정원을 대폭 확충한 만큼 앞으로 계급정년에 따른 전역자도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이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도와야 합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육군 부사관의 정원을 대폭 확충한 만큼 앞으로 계급정년에 따른 전역자도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이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도와야 합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특히 육군 부사관 정원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급증해 인건비만 해마다 1000억원 이상 부족할 정도입니다. 군 조직 개편에 따라 앞으로도 부사관 정원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계급정년에 따라 전역하는 부사관도 급증할 수 밖에 없는데 취업 지원제도는 제자리입니다. 영관급 장교의 재취업률이 50% 이상인 반면 준·부사관의 취업률은 40%에도 못 미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만큼 향후 부사관 전역 예정자에 대한 집중적인 재취업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능직 자격 취득이나 현장 실습과 관련한 교육지원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제대군인의 취업욕구를 충족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특히 많은 제대군인이 사무직으로의 전환을 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력 수요가 비교적 많은 사회복지직 등에 대한 교육지원을 강화하고 제대군인이 선호하는 사무직 교육은 한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단순한 사무프로그램 사용법을 알려주는 기존 방식 대신 적극적으로 기업과 연대해 현장에서 업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업도 사회 공헌의 한 방향으로 제대군인 재취업 환경을 조성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직업군인 선택한 것 후회한다” 목소리 경청해야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의 제대군인 활용 실태조사’에서 제대군인 채용에 대해 조사 대상 기업의 82.5%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군 복무 결과로 리더십과 성실성, 책임감,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전문성을 정부와 군에서 채워준다면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제대군인에 대한 일자리 확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성과 보여주기식 취업자 수나 상담자 수에만 치중한다면 제대군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기업과 제대군인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느라 한 곳에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전국을 떠돌다 사회로 돌아오는 제대군인이 많습니다. 격무에 치여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이도 많습니다. 더이상 “직업군인 된 것을 후회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취업전선에서 낙오하는 이들이 더 늘지 않도록 희망을 주시길 바랍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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