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의 성공과 위기
‘불가리스, 이오, 프렌치카페, 몸이 가벼워지는 17차, 맛있는 우유 GT, 남양분유, 임페리얼 드림XO, 아인슈타인 우유’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먹어봤음 직한 낯익은 유가공 식음료 제품들은 모두 한 기업에서 탄생했다. 남양유업을 창업한 고 홍두영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불린다. 라이벌인 매일유업 고 김복용 창업주와 같은 이북 출신으로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해 1964년 지금의 남양유업을 세웠다. 2010년 영면하기까지 46년을 불모지 같았던 한국 낙농산업을 개척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우리 기술로 직접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홍 창업주의 생각은 우유, 조제분유, 발효유, 치즈, 커피, 음료 등 200여가지 제품 속에 시장점유율 60% 이상의 분유, 이유식 히트 상품들을 쏟아냈다. 한눈 팔지 않는 실속 경영 속에 승승장구하며 연매출 1조원대를 달성했던 남양유업은 2013년 ‘갑질’ 파문을 겪으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남양유업의 전남 나주 커피 공장 전경. 경기침체기였던 2008년 700억원을 투자해 호남 최대 유가공 공장인 남양유업 나주공장을 만들었다.
남양유업 제공
남양유업 제공
홍 명예회장은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창업했지만 8년 만에 화폐개혁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첫 사업에 실패한 홍 회장은 이후 깐깐한 짠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다. 분유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3년 선진국 출장길에서였다.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는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는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을 떠올렸고 이듬해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1965년 충남 천안에 첫 공장을 짓고 자가 생산 체제에 들어간 홍 창업주는 1967년 유아용 제조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 대박을 터뜨렸다. 10년 뒤인 19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해 히트시켰고 이듬해 유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했다. 홍 창업주는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 등을 받기도 했다.
가업의 바통을 넘겨받은 이는 장남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다. 홍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때인 1973년부터 틈나는 대로 회사에 나와 입출금 전표를 정리하면서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의 업무를 살펴왔다. 1990년 4월 홍 창업주가 회사 사장 자리를 홍 회장에게 물려준 건 업무 외에도 약속이 없으면 늘 점심을 같이해 주는 아들의 극진한 효심도 한몫했다. 1977년 기획실 부장으로 정식 입사한 홍 회장은 상무, 전무를 거쳐 10년 만에 부사장에 오른 뒤 1990년대 사장을 거쳐 2003년 회장이 됐다.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 이상 성장을 이뤘고 1998년에는 은행차입금을 전액 갚으며 무차입 경영의 원조가 됐다. 사장 재임 당시 불가리스, 아인슈타인 우유, 아기사랑수 분유, 이오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입사 당시 200억원 수준이었던 매출 규모를 1조원대로 키워 놨다. 현재 계열사는 부동산임대업인 금양흥업과 음료제조업인 남양F&B가 있으며 지분 100%를 남양유업이 갖고 있다.
그러나 좌절이 없을 것 같았던 남양유업은 2013년 초 ‘대리점 밀어내기’와 ‘욕설 우유’ 등 갑질 파동을 겪으며 일부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전개, 영업이익이 2012년 474억원에서 2013년 -220억원, 2014년 -261억원으로 적자로 떨어졌다. 매출액도 3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 1조 1263억원으로 2012년(1조 3403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급감했다. 여기에 홍 회장이 동생 홍우식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광고에 남양유업 광고를 99% 몰아주면서 논란이 일었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과징금 폭탄, 지난해 탈세 혐의로 홍 회장이 검찰에 기소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황제주로 불렸던 주가도 2013년 4월 114만 9000원(종가 기준)에서 현재 70만 8000원(23일 종가 기준)으로 40%가량 하락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2015-06-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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