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령 낮을수록, 여성일수록 ‘괴로움’을 ‘괴롭힘’으로 오인 [빌런 오피스]

[단독] 연령 낮을수록, 여성일수록 ‘괴로움’을 ‘괴롭힘’으로 오인 [빌런 오피스]

김성은 기자
입력 2024-08-01 18:11
수정 2024-08-02 09:1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성별·세대별로 다른 인식 차이

이미지 확대
정부가 주 52시간까지만 일하도록 하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편방안을 확정한 6일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를 걷고 있다. 2023.3.6. 도준석 기자
정부가 주 52시간까지만 일하도록 하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편방안을 확정한 6일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를 걷고 있다. 2023.3.6. 도준석 기자
“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부작용이라면 ‘일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확산되는 것이죠.”(안성희 공인노무사)

“괴로움과 괴롭힘을 착각해서 하는 신고라면, 신고로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죠.”(문강분 공인노무사)

“어린 직원들이 신고할까 노심초사 특정 직원에게 업무를 몰아 버려요. 퇴사·이직이 어렵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40대가 표적이 되는 거죠.”(대기업 팀장)

●간부급 직원, 후배 훈련 주저하게 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5년 만에 한국의 직장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의 빌미는 같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성별·세대별로 판이하게 다른 인식 차에서 비롯됐다. 서울신문과 행복한일연구소가 직장인 14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괴롭힘 인식 조사를 지난달 31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정당한 업무 지시의 범위가 무엇인지,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지까지에서 성별·세대별 인식은 다르게 나타났다.

상사의 업무 지시, 회사의 인사 명령을 바라보는 세대 간 관점 차에서 최근 회사마다 업무 분장을 둘러싼 갈등이 왜 늘어나는지 엿볼 수 있다. ‘회사의 인사 명령이나 상사의 업무 지시 때문에 괴로우면 직장 내 괴롭힘이다’라는 질문에 대해 2030 세대의 65.5%가 ‘그렇다’고 틀린 답을 내놓았다. 4050세대의 55.3%보다 10.2% 포인트 높은 수치다.

행복한일 측은 “부당한 인사 명령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거나 노동법 위반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인사 명령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연령이 낮을수록, 성별로 보면 여성일수록 괴로움을 괴롭힘으로 잘못 인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슷하게 ‘일이 미숙한 직원을 가르치면서 지적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다’라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24.9%가 ‘예’라고 답했다. 4명 중 1명 꼴로 미숙함을 지적받아 괴로운 상태를 괴롭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질문에 ‘예’라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28.0%)이 남성(20.6%)보다 높았다. 일이 미숙한 직원을 가르치는 일을 ‘괴롭힘’으로 여기는 조직문화 속에서 간부급 직원들은 후배 직원들에게 업무를 가르치거나 훈련을 위한 업무를 시키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것이 ‘일하지 않는 조직문화’의 출발점이 된다고 안성희 노무사는 우려했다.

●95% “공개적 업무 지적은 괴롭힘”

성별·계층별 가치관의 빠른 변화에 맞춰 상대에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직장 내 매너도 이번 인식 조사에서 확대됐다. 실수를 지적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직원의 실수를 공개적(단체 대화방 등)으로 지적하는 것은 괴롭힘’이라는 질문에 대해선 전체의 95.2%가 ‘그렇다’고 답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0대 여성은 99.1%, 30대 여성은 98.0%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호응하며 평균을 끌어올렸다. 업무를 잘 못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공개적으로 지적받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는 계층이 있는 것이다.

‘팀원의 과실 때문에 혼잣말로 욕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혼자 신경질을 내는 행동’과 관련해선 전체의 81.8%가 이 행동 또한 괴롭힘이라고 옳게 인식했다. 역시 더 들여다보면 20대의 90.2%가 이런 행동을 괴롭힘으로 판단했고 30대(82.5%)·40대(79.0%)·50대 이상(80.4%)의 민감도는 비교적 떨어지는 격차가 나타났다. 2000년대 이후 출생해 학생인권조례가 작동하는 초중고교를 다닌 20대의 눈에는 혼잣말로 욕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폭력적 행위 자체가 생경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다른 직원, 또는 동성 직원에게 격려나 친밀감의 표시로 가벼운 스킨십을 하는 것’에 관해서도 세대 간 인식 차는 컸다. 특히 ‘동성 간 스킨십’을 성희롱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030세대에선 53.6%로 4050세대(43.3%)에 비해 10.3% 포인트 차이가 났다. 젊은 세대에게는 직장 내 모든 신체 접촉이 긴장 유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결과로 평가된다.
2024-08-02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