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주범 신병·물증 확보 난항…北 배후 의심만 점증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가 사실상 일단락되는 분위기다.주범으로 지목한 북한 국적 용의자들이 평양으로 도피해 신병 확보가 불가능한 가운데 유일하게 체포한 북한인 용의자 리정철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나 자백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법처리는 ‘조연’으로 분류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여성 용의자 등 단 2명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어 북한 배후설을 확인하지 못하고 결국 이번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모하메드 아판디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이 2일 리정철에 대한 기소를 포기한 것은 김정남 암살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다.
리정철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김정남이 살해된 지 나흘 만인 17일 시내 외곽 자신의 아파트에 있다가 체포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드러난 리정철의 행각은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범행 당일 평양으로 도주한 용의자 4명을 도와줬다는 정도다.
그러나 그는 사건 당일 공항에 가지도 않았고 공항 폐쇄회로(CC)TV 화면에 잡힌 용의자들 가운데 자신의 모습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리정철이 약학과 화학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김정남 암살에 쓰인 독극물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리정철이 범행에 직접 개입했거나 지원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말레이시아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서 더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 기소 포기와 추방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고위급 대표단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리정철을 증거도, 자백도 없이 강제 구금하고 있다며 인권침해 문제까지 제기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이제 벽에 가로막힌 모습이다.
리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김정남 암살의 주범으로 파악된 북한인 4명은 김정남 살해 직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러시아를 거쳐 평양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인터폴 미가입국인 데다가 말레이시아와는 범죄인 인도 협정도 없어 이들 용의자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찾는데 해도 송환을 기대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경찰이 김정남 암살에 연루됐다고 발표한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4)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은 치외법권 지역인 북한대사관에 은신한 것으로 알려져 검거 등 강제 수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을 추방 조치해 출국 과정에서 검거하는 방법이 있지만 현광성의 경우 국제협약상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 신분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강수를 두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김정남 살해 혐의로 지난 1일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인 도안 티 흐엉(29)을 처벌하는 수준에서 이번 사건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 여성은 사건 당일 공항에서 김정남에게 독극물 추정 공격을 하는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김정남 시신의 부검 결과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가 검출되면서 이들의 혐의는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들은 김정남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 영상이나 TV 쇼를 찍는 것으로 알았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김정남 암살 주범들의 검거가 물 건너가고 범행 동기 파악, 물증 확보에도 난항을 겪으면서 사건 배후 규명이 미궁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김정남 시신에서 검출된 VX는 북한 정권 배후설에 힘을 실었다. 북한이 VX를 보유한 소수 국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데다가 북한인들이 암살 용의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북한이 배후로 의심되지만, VX의 출처와 반입 경로는 의문에 가려져 있는 등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리정철이 석방되면 앞으로는 김정남의 시신 인도 문제를 놓고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측은 여권상 이름이 김철(김정남)인 북한인의 시신 인계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를 이를 거부하고 있다.
수브라마니암 사타시밤 말레이시아 보건부 장관은 “시신은 정당한 친족에게만 인도할 것”이라며 “신원확인 없이는 시신을 인도하지 않을 것이고 여기에 시한은 따로 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남 암살 사건이 미스터리로 남은 채 북한의 소행을 ‘확신’하고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한국과 서방국가, 이를 반박하는 북한의 공방이 가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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