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계획에 요란·허술한 실행?…김정남 암살, 남은 의문들

치밀한 계획에 요란·허술한 실행?…김정남 암살, 남은 의문들

입력 2017-02-20 14:10
수정 2017-02-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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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일정·동선 파악 어떻게’ ‘빗나간 완전범죄? 의도된 연출?’ 의문김정남 피습후 “누군가 액체를 뿌렸다” 신고안했다면 완전범죄 가능성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사건이 북한이 저지른 조직적 범죄라는 정황이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많다.

특히 최대 1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포착되는 것과 반대로 용의자들의 행적은 다소 허술하다고까지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빗나간 완전범죄인지, 아니면 의도된 연출인지 주목된다.

◇ 김정남 일정 어떻게 파악했나…조력자 없이 불가능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고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온 김정남을 노린 이번 사건은 김정남의 동선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도주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과 직접 암살을 실행해 체포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용의자 2명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지난 6일 전에 속속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범행을 준비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에 따르면 외국으로 달아난 북한 국적 용의자들은 지난달 말부터 말레이시아에 2∼3일 간격으로 차례로 입국했다.

먼저 홍송학(34)이 지난달 31일에 말레이시아에 들어왔다. 리재남(57)은 이튿날인 2월 1일에, 리지현(33)은 그로부터 사흘 뒤인 2월 4일에, 이어 오종길(55)이 지난 7일 마지막으로 말레이시아에 입국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베트남 여권 소지자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를 시켜 김정남을 암살하고 나서 김정남 출국 예정일이던 이날 한꺼번에 출국했다. 이들이 지난 17일 이미 평양에 도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한 국적 용의자들이 당국의 눈을 피하고자 따로 입국하고 범행 후 일시에 달아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 정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흐엉과 아이샤는 각각 이달 4일과 2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했으며, 범행 후 말레이시아를 떠나기 전에 경찰에 붙잡혔다.

이러한 점으로 미뤄보면 북한이 김정남의 말레이시아 입·출국 일정을 모두 꿰차고 있었으며, 김정남의 일정과 동선을 잘 아는 누군가가 북한에 그 정보를 알려줬다고 추측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용의자들이 1년 동안 김정남의 동선을 파악했으며, 이번 범행 당시에도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 너무 허술하고 요란한 범행…‘완전범죄’ 빗나갔나

북한 최고 지도자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노린 범행은 허술하고 요란했다.

암살단은 외국 국적 여성 2명을 내세워 단 몇 초 만에 범행을 완수했고 쉽게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 의문의 독극물을 사용하는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노렸다.

그러나 곳곳에 CCTV가 설치된 공항에서 이들의 얼굴과 범행이 CCTV에 그대로 포착돼 행적이 꼬리가 밟혔다.

특히 용의자 중 가장 먼저 붙잡힌 베트남 여권 소지자 흐엉은 ‘LOL’ 가리지 않은 얼굴과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CCTV에 찍혔는데도 범행 이틀 후 경비가 삼엄한 사건 현장에 다시 나타나 덜미를 잡혔다.

달아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도 모두 공항 CCTV에 모습이 포착됐다.

현지 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수많은 CCTV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범행이 될 뻔 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이 공격을 받은 후 곧바로 의식을 잃거나 아니면 공항을 벗어나지 않고 공항 관계자에 “누군가 액체를 뿌렸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도 용의자들의 완전범죄 계획을 틀어지게 한 요인일 수도 있다.

김정남이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거나, 아니면 공격 받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공항을 떠나 사망했다면 돌연사로 위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의자들이 수많은 목격자와 CCTV로 둘러싸인 국제공항을 범행 장소로 택하면서도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 어설픈 행동은 의도된 연출?

따라서 이러한 용의자들의 어설픈 행동 자체가 북한이 그린 큰 그림 하에 의도된 연출이라는 해석도 있다.

범행이 결코 허술하게 이뤄진 게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주도면밀하게 짜인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도주한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은 신속하게 말레이시아를 벗어나긴 했지만 모두 공항 CCTV에 포착되고 북한 여권을 그대로 써서 북한 국적임을 노출했다.

암살 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이라면 충분히 가짜 여권 등으로 신분을 숨길 수 있는데 왜 굳이 북한 여권을 사용했는지는 의문을 남긴다.

여권 사용을 통해 김정남 암살을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말레이시아 중문매체 동방(東方)일보는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말레이시아에 남은 리정철이 도주한 주범 4명에 의한 ‘안배된 희생양’일 것으로 추측했다.

신문은 소식통을 인용해 리정철이 희생양으로 설계된 인물일 것이라며 다른 주범들이 무사히 도피한 뒤 말레이시아를 떠나도록 안배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 국적 범인 가운데 누군가 현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고, 리정철이 암살단 리더가 아니라면 체포되더라도 윗선 연계가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를 일부러 말레이시아에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방일보는 리정철이 중간 연락책 역할을 맡으면서 주범들에게 암살 실행을 위한 말레이시아 현지 정보를 제공하고 숙소와 교통 등을 조율한 것으로 추측했다.

일본 교도통신도 쿠알라룸푸르 교외에 살면서 현지 회사에 근무해 주변 지리에 익숙한 리정철이 용의자들에게 운전기사와 후방지원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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