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찬희 경제정책부 선임기자
전국의 댐과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생활용수는 뒤로하고 먹을 물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급기야 충청 서부지역에는 제한급수조치까지 내려졌다. 전문가들은 124년 만에 겪는 극심한 가뭄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난리법석을 치르면서도 가뭄재해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다. 물 부족 경고를 남의 일인 양 무시하고, 가뭄에 대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 2007~2008년에 올해와 같은 극심한 가뭄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이렇다 할 대비가 없었다. ‘올해만 견디고 넘기면 내년 여름에는 해결되겠지’ 하는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
현재의 댐, 저수지로는 2년 이상 가뭄에 대처하기 어렵다.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 가뭄의 심각성은 한 해에 그치지 않고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길게는 20년 이상 기근이 이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1882년부터 시작된 가뭄은 1910년까지 이어졌다. 가깝게는 1978년부터 3년 연속 가뭄에 시달렸다.
가뭄은 연례행사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근본대책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물그릇 확대가 필요하다. 가뭄은 단순히 연간 강수량의 통계로만 따질 수 없다. 한반도의 연간 강수량은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연간 수자원 총량(1297억㎥) 대비 이용 가능 수량(753억㎥)은 58%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43%는 홍수기에 가두지 못하고 흘려보내기 때문에 실제 이용 수량은 수자원 총량 대비 26%(333억㎥)에 불과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흘려보내는 물을 담아둘 수 있는 물그릇 확보가 시급한 이유다.
과거처럼 대규모 댐을 건설하자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공감과 합의를 바탕으로 지역 특성에 따른 맞춤형 물그릇 확보가 필요하다.
수자원의 효율적 배분도 요구된다. 물 수급 불균형으로 남는 지역의 물을 부족한 지역에 나누어 이용하는 방안이다.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금강 부여보에 가둔 물을 보령댐으로 보내 충청 서해안 지역 가뭄을 해소하는 길을 찾은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효율적 물 배분을 놓고 지역 간 갈등도 만만치 않다. 영산강 유역에 설치된 댐의 물을 섬진강 수계로 흘려보내거나, 용담댐 물을 금강 본류로 추가 방류하고자 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역 내 갈등도 있다. 한탄강댐이 대표적인 경우로 고질적인 가뭄·홍수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지만 댐의 수위를 높여 물을 가두는 것을 놓고 주민 간 갈등을 겪고 있다.
지하수 댐 개발 등 다각적인 수자원 확보방안도 본격 논의할 때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인 1인당 수돗물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작은 노력부터 실천할 때이다.
chani@seoul.co.kr
2015-10-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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